韓美 금리 역전 예고... '1360兆 딜레마' 시작됐다

    입력 : 2017.06.16 09:34

    [美 기준금리 0.25%p 인상]


    - 美, 연준 자산도 줄인다
    연준 자산 年 3000억달러 줄이면 기준금리 0.25%p 올리는 효과


    - 깊어지는 한국은행의 고민
    금리 올리면 가계빚 큰 부담… 금리 동결 땐 자금유출 우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14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동시에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연준이 사들인 국채, 주택저당증권(MBS) 등 자산도 연간 3000억달러(약 340조원)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준이 자산을 줄이면 채권 시장엔 채권 공급이 늘어나 채권 가격이 떨어지는(금리는 상승하는) 효과를 준다. 기준금리 인상과 같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3000억달러 축소가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과 맞먹는다고 분석한다. 미 연준은 2019년까지 현재 연 1~1.25%인 기준금리를 연 3%까지 올릴 계획인데, 여기에 더해 추가로 시장 금리를 더 올리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1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이 재닛 옐런 미연방준비제도 의장의 TV기자회견 방송을 켜 놓은 채 금융시장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이날 연방준비제도는 올 3월 이후 3개월 만에 미국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AFP 연합뉴스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2개월째 묶어 놓고 있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로서는 고민이 커지고 있다. 경기 회복세에 들어선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2%대 저성장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한은이 미국을 따라 당장 금리를 올리긴 어렵다. 하지만 한·미 간 기준금리가 역전되고 여기에 더해 미국 시장금리가 더 오른다면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우려는 커진다. 한은으로선 '경기 살리기'냐 '외국인 자금 유출 막기'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美, 연준 자산 줄이기에도 나서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제로 금리 정책'으로 기준금리를 0~0.25%로 낮췄다. 더는 기준금리를 낮출 수 없자 2014년까지 '양적 완화 정책'으로 국채, MBS 등 채권을 사들여 시장 금리를 낮췄다. 이 와중에 연준이 보유한 자산은 2007년 8000억달러에서 4조5000억달러(약 5000조원)까지 불어났다.



    미국 연준이 이번에 줄이겠다고 하는 자산은 위기 때 불어난 4조5000억달러의 일부다. 자산 축소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유한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팔지는 않고 채권 만기가 돌아오면 원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자산을 줄일 계획이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자산 축소는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며 "비교적 빨리 진행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시작할지는 밝히지 않고, 1년에 3000억달러를 줄인다는 일정표만 제시했다. NH투자증권은 이날 "1년에 연준 자산 3000억~3500억달러가 축소되는 것은 연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자산 축소 시작 시점으론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9월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은 금리 인상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15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후, 작년 말에 다시 한 차례 올리고, 올 들어서는 벌써 두 차례 금리를 올렸다.


    ◇외국인 자금 유출 나타날까


    우리나라보다 미국의 금리가 높아지면 외국인 자금의 유출 우려가 커진다. 미국이 오는 9월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리고 한은이 금리를 계속 동결한다면 10년 만에 한·미 간 기준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올 들어 유입되던 외국인 주식·채권 자금이 방향을 바꿀지가 관심사다. 과거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기는 1999년 7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9월 두 차례 있었다. 당시 외국인 주식 투자금이 빠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직접투자까지 포함한 전체 자본시장을 볼 때 외국인 자금 유출은 없었다. 다만 당시는 금리 역전 후 2~8개월이 지나 한은이 미국을 따라서 금리를 올렸고, 성장률이 높아 외국인들이 자금을 회수할 이유가 적었다.


    1999~2001년 평균 성장률은 11%대, 2005~2007년은 성장률이 5%대였다. 2%대 성장을 하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글로벌 IB "한국은 내년에나 올릴 것"


    이주열 총재는 지난 12일 경제 상황이 뚜렷이 개선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2014년 4월 취임 후 처음으로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은 내부에선 정부가 추진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이나 가계부채 대책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금통위원은 "확장적 재정정책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장기간 지속할 필요성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금융안정 리스크를 줄여줌으로써 한은이 통화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이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금리를 올리면 1360조원대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미 연준이 금리를 몇 번 올려도 경기 회복을 지원하는 수준이라고 한다"며 "우리도 경기 흐름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노무라 등 글로벌 IB들은 한은이 올해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내년부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