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의 공포... 中企 6만곳 "더는 못 버틴다"

    입력 : 2017.06.15 09:24

    [최저임금 1만원 현실화땐 중소 제조업체들 줄도산 우려]


    - 中企 절반이 영업이익 1억 미만
    외국 근로자로 간신히 버티는데 최저임금 54% 뛰면 대부분 적자


    - "망하길 기다리느니 차라리 폐업"
    "영세 제조업체일수록 더 치명적… 공장자동화로 사람 줄일 수밖에"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는 K사(社). 표면처리(도금) 작업을 하는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생선 삭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감색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 12~13명이 구리와 니켈 용액을 담은 큰 통에 굴비 말리듯 엮어놓은 플라스틱 조각을 넣었다가 빼자 번쩍거리는 자동차 엠블럼(휘장)이 완성됐다. 현장 근로자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공장 2층의 검수실에 올라가서야 완성품을 점검하는 3명의 한국인 근로자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 회사의 200여 직원 중 90여 명이 외국인 근로자였다.


    이 회사의 장모 상무는 "젊은 한국인 근로자들은 아무도 도금 공장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겨우 공장을 돌리고 있다"며 "이런 마당에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 현실화되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남은 자금을 짜내 공장을 자동화하고 인력을 대폭 줄이거나 그것도 안 되면 폐업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2일 경기도 안산의 한 중소업체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플라스틱 도금 작업을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인은 아무도 도금 공장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겨우 공장을 돌리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되면 폐업 위기에 내몰린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외국인 근로자들로 근근이 버텨온 중소 제조업체들 사이에 최저임금 1만원의 공포가 퍼지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 3년 후 최저임금을 현재 6470원에서 1만원으로 올리면 도금·금형·용접 등 이른바 '3D'(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 업종의 중소기업들과 영세한 대기업 2, 3차 협력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시화·반월공단에는 연간 영업이익이 수천만원도 안 되는 공장들이 수두룩하다"며 "최저임금 인상은 일회성 비용 증가가 아니라 버는 돈으로 인건비도 못 주는 구조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으로 올리면 연쇄 도산 위기 터질 것"


    부산광역시에 있는 자동차용 부품 제조업체 S사의 차모 대표는 "아무리 주판알을 튕겨도 최저임금 1만원을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작년에 500억원 안팎의 매출에 영업이익 10억원 정도를 냈다. 오랜 구인난을 겪으며 180명 직원 가운데 네팔·베트남·몽골 출신 근로자 44명을 쓰고 있다.


    이 회사의 입사 1년 차 네팔인 근로자의 인건비 명세서를 보면 이 외국인 근로자는 지난달 최저임금(6470원) 기준으로 224시간(시간외근무 72시간 포함) 일해 220만원을 받았다. 회사 측은 여기에 사회보험, 퇴직금, 숙식비 등 약 90만원의 추가 비용을 포함해 총 310만원을 인건비로 부담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1인당 인건비가 현재 연간 3720만원에서 5145만원으로 뛴다"면서 "그러면 연간 총 인건비 부담액이 14억원이나 늘어나 바로 적자를 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의 '2016년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 숫자는 약 13만4000곳으로 평균 영업이익은 약 2억2000만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중 약 30%는 현재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본지가 중소기업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조사를 의뢰한 결과,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중소제조업체 한 곳당 평균 6000만원 안팎의 추가 인건비 부담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 1억원 미만인 제조업체와 현재 적자 상태인 기업들이 모두 한계 상황에 놓인다는 결과다. 다시 말해 6만~7만 곳이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최저임금을 올리더라도 한국인 근로자들의 중소제조업체 기피 현상은 개선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반월공단 K사는 지난 10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직원 임금도 약 2배로 올랐지만 한국인 신입 근로자를 한 명도 뽑지 못했다.


    60대 근로자가 나간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로 메우는 행태는 중소제조업 현장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가끔 찾아오는 한국인 취업 희망자는 다들 반나절 만에 그만둔다”고 했다.


    현재 중소 제조업체들은 153만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인력난으로 부족 인력이 6만명에 달한다. 그나마도 20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백을 메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의 '2016년 외국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963개 중소기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8~9곳(84.3%)이 '내국인 구인이 어려워 외국인을 쓴다'고 답했다. 광주광역시의 하남산업단지에 있는 가전용 금형제조업체 D사는 전체 직원 30여 명 중 10여 명이 외국인 근로자다. D사의 김모 대표는 “지방 공장은 원래 한국사람 일손을 구할 수도 없다”며 "최저임금 1만원이 돼도 이제 한국 사람은 절대 블루칼라 일 안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노민선 연구위원은 "영세 제조업체일수록 최저임금 인상이 치명적"이라며 "일자리를 늘리려면 이런 영세 업체들이 생존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