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AI'가 온다

    입력 : 2017.06.13 09:11

    [의료분야에 도전하는 인공지능]


    딥마인드, 160만명 진료기록 학습… IBM, '왓슨'에 추론 능력 추가
    MS, 의사 보조해 약 처방까지… 국내업체들도 속속 도전장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바둑프로그램 알파고를 만든 영국 딥마인드는 요즘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HS)에 등록된 160만명의 의료 정보를 인공지능에 학습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바둑에서 방대한 양의 기보(棋譜)를 학습한 것처럼 머신 러닝 기술을 이용해 각종 진료기록과 X레이 사진을 익히고 있다. 이를 통해 각종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이달 초 알파고와 중국 커제의 대국이 끝난 뒤 "이제는 알파고를 이용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X레이 사진과 각종 데이터가 펼쳐진 스크린을 앞에 두고 있다. 의료 시장은 인공지능이 빠르게 적용되는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토픽이미지


    인공지능이 의료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IBM·마이크로소프트는 의사를 보조해 약물 처방까지 조언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도 X레이나 CT(컴퓨터 단층촬영) 이미지를 분석해 각종 질병을 진단하는 인공지능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의료분야에 눈을 돌리는 것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각종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예방할 경우 의료비 절감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헬스케어 분야가 인공지능 기술을 상용화하는 시험무대가 되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액센츄어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의료 시장이 2014년 6억달러(6761억원)에서 2021년 66억달러(7조3900억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통해 2026년에는 미국에서만 연간 1500억달러(169조원)의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쌓여 있는 의료 분야, AI의 다음 승부처"


    미국 IBM은 '메디컬 시브'(sieve)라 불리는 의료용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다. 종양 진단에 특화된 인공지능 왓슨에 이은 차세대 프로젝트다. IBM 측은 "의료진을 돕기 위해 추론 능력을 갖춘 차세대 인공지능 어시스턴트 개발이 목표"라면서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X레이 사진을 판독하고 심장의 이상 유무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BM은 인공지능으로 혈액을 분석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을 인공지능에 결합해 손톱만 한 반도체 칩 하나로 혈액을 분석해 질병 진단을 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리건의대 암연구소와 함께 종양 진행 상태에 대한 이미지 분석을 통해 인공지능이 가장 효과적인 약물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하노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딥마인드는 영국 NHS와의 공동 연구 외에도 영국의 안과 전문 병원 무어필드가 보유한 100만 건의 안구 스캔 기록에 대한 접근권도 확보해 안질환 데이터 연구도 착수했다.


    ◇국내업체들도 AI 의료 기술에 도전장


    국내에서도 SK텔레콤과 KT 등 대형 통신업체를 비롯해 스타트업들이 인공지능 의료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KT는 이달 초 국립암센터와 함께 환자 유전 정보와 임상 정보 등을 통합 관리하는 빅데이터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기반으로 환자별 특성에 맞는 진단·치료법을 제공하는 정밀 의학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은 고려대의료원과 함께 인공지능을 진료에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특히 음성인식 진료 시스템 개발을 위해 음성인식 인공지능 '누구(NUGU)'를 병원 진료실에 배치해 의사의 처방과 진단 내용을 광범위하게 수집할 계획이다.


    스타트업 루닛은 서울대병원·연세대세브란스병원과 협업해 흉부촬영 사진을 판독해 결핵·폐렴 등 폐질환과 유방암 진단이 가능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작년 10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인공지능의 진단 능력을 겨루는 국제대회(TUPAC 2016)에서 해외 유명 IT(정보기술) 기업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백승욱 루닛 대표는 “연간 1000만 건의 건강검진이 이뤄지는 한국은 정상인부터 중증 환자까지 다양한 데이터가 존재한다”며 “다양하고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 정상·비정상을 판별하는 능력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뷰노 역시 영상진단 분야에서 컴퓨터 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사진 등을 분석하는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의료 빅데이터 개방성 높여야


    하지만 국내 헬스케어 분야의 발전을 위해선 병원들이 보유한 의료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더 다양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의료 기관들은 의료 기록을 병원 내에만 보유하고 열람·기록하도록 돼 있어 원격 의료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이상은 연세의료원 헬스IT산업화지원센터 교수는 "국내에선 의료 정보를 활용할 수 없어 인공지능이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며 "개인정보를 식별할 수 없게 예방 조치를 하면 IT 기업들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대폭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