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기본료 폐지' 새 정부 깊어지는 고민

    입력 : 2017.06.12 09:25

    ['공약 이행 대책' 뚜렷한 결론 못내… 다시 논의하기로]


    "LTE 통신비도 인하 진행… 전반적 시일 좀 걸릴 것" 장기화될 가능성 내비쳐
    민간 통신사에 '폐지' 요구할 법적 근거도 마땅하지 않고 통신 3社 강력 반발에 '주춤'
    시민단체는 '폐지' 압박 나서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10일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휴대전화 기본료(약 1만1000원) 폐지'를 포함한 문재인 대통령의 통신비 인하 공약이행 대책보고를 받았지만, 이날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 주 내 미래부와 다시 회의를 열어 추가 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이개호 국정위 경제2분과 위원장은 업무보고를 마친 뒤 "미래부가 고심하고 있으나 아직 국민 피부에 와 닿을 정도에는 미흡하다"며 "미래부가 방안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이개호(왼쪽에서부터 셋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장이 미래창조과학부 업무 보고 중 통신비 인하 관련 내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미래부가 보고한 통신비 절감 방안에 대해, "미흡하다. 다음주에 다시 보고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개호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통신업계에서는 정부가 민간기업인 통신업체에 기본료 폐지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은 데다, 통신 3사인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반발이 워낙 거세 국정위도 주춤거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정위, 보편적 통신비 인하에 방점


    이개호 분과위원장은 10일 미래부 업무보고 모두 발언에서 "공약을 실행하는 것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통신 3사의 독과점 구조로는 자발적 경쟁을 통한 소비자 후생 증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등 강한 표현을 쏟아냈다. 이 위원장은 또 "공약 후퇴가 아닌 방안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통신요금 인하를 기본료가 들어있는 2·3G(2·3세대 이동통신) 사용자뿐 아니라 LTE(4세대 이동통신) 사용자에게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국정위 내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도 감지됐다. 이 위원장은 통신업체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통신비를 포함한 국민 생활비 경감 문제는 대통령의 최대 관심 사안"이라며 "국정위는 과거 정부와 같은 일방적 지시, 강요의 방식이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통신비 인하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알뜰폰의 활성화로 기본료 폐지 이상의 통신비 경감 효과를 기대한다"고 알뜰폰 업체에 대한 지원 의사도 시사했다. 이 역시 통신 3사가 기본료를 폐지할 경우 알뜰폰 사용자들이 다시 통신 3사로 돌아가 알뜰폰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다. 다른 국정위 관계자들도 이날 회의 직후에는 말을 아꼈다. 지난 6일 미래부가 기본료 폐지 방안 마련에 소극적이라고 질타했던 최민희 위원도 "기본료 폐지에 대해선 따로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강력 반발하는 통신 3사


    이 같은 국정위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는 미래부를 통해 통신 3사의 강한 반발이 전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실제로 김용수 미래2부 차관은 국정위 보고 하루 전인 지난 9일 통신 3사 대외업무(CR) 임원들과 일대일로 따로 만나 자발적 기본료 폐지를 유도해보려 했지만, 통신업체들이 의외로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업체 임원들의 성토가 이어지며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고 한다.


    한 통신업체 임원은 "기본료를 폐지하면 수조원 적자를 볼게 될 것이 뻔한데, 망(網) 투자는 고사하고 주주들에게 배임죄로 소송당할 처지"라며 "자발적으로는 못하겠으니 정부가 법을 제정해 강제로 시행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통신업체 임원은 "후발 사업자들은 지난 10년간 10조원 이상을 쏟아부어 이제 겨우 흑자 내는 수준"이라며 "통신요금을 일괄 1만1000원씩 인하하라는 것은 이동통신 사업을 접으라는 것"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권 아래에 있는 통신업체들이 정권 초기에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기본료 폐지 압박하는 시민단체


    반면 시민단체들은 전 사용자가 아닌 2·3G 사용자에게만 기본료를 폐지해주는 것은 '공약 후퇴'라고 비판하며 국정위와 미래부를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국정위의 강도 높은 행동을 요구하며 통신업체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또 참여연대, 경실련, 소비자시민모임 등 소비자·경제 관련 10여개 시민단체는 지난 9일 국정위와 함께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통신 원가를 공개해 원가 대비 요금제가 적정하게 설정되는지 검증하는 이용 약관 심의제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통신업체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원가 공개라는 초강수를 띄운 것이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연합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은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일부 가입자에게 혜택을 주는 대신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에게 가격 인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