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도 알바비 모아 "집 사자"... 묻지마 갭투자

    입력 : 2017.06.12 09:16

    [부동산 갭투자 주의보] [上] 너도나도 위험한 도박


    - "2억원으로 아파트 24채"
    집값 대비 전세금 높은 곳 타깃… 부동산 카페마다 '무용담' 도배
    투자 안내서 베스트셀러 되기도


    - 집값 떨어질 땐 순식간에 '쪽박'
    전세금 대란 발생 가능성에도 정부가 규제할 방법 없어


    "지금 3억원짜리 전세에 살고 계시다고요? 일단 당장 '1억 보증금 월세'로 돌려서 현금 2억원을 확보하세요. 딱 4년 뒤면 아파트 24채를 가진 자산가가 될 수 있습니다."


    기자가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한 갭(gap) 투자 컨설팅 사무실을 방문하자 상담원이 이렇게 말했다. 갭투자는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금의 차액(差額)을 투자금으로 아파트를 사들이는 기법이다. 상담원의 설명은 이랬다. 한 채당 6억원 미만의 주택은 대략 취득세와 각종 수수료 부담액이 400만원 정도인데, 이럴 경우 2억원만 있으면 수도권에서 1억8000만원짜리 전세 입주자가 있는 매매가(價) 2억원짜리 집 8채를 살 수 있다는 논리다. 2년 뒤에는 다시 8명의 전세 세입자로부터 2000만원씩 전세금을 올려 받은 뒤 갭투자로 아파트 6채를 더 구입한다. 그 2년 뒤 똑같은 방식으로 전세금을 올리게 되면 이번엔 10채를 더 살 수 있다는 것. 이 사무실 벽에는 갭투자를 했다는 사람들의 사진이 잔뜩 붙어 있었다. 상담원은 "작년 10월부터 270여 명 회원이 아파트 500여 채를 샀다"며 "언제까지 회사 다니며 살 것이냐. 갭투자는 인생의 구원(救援)"이라고 설득했다. 재테크 상담이 아니라 마치 사이비 종교집단의 전도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 8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앞에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을 적어 놓은 간판이 서 있다. 강북구는 평균 전세금이 매매가의 77.9% 수준으로 서울 평균(73%)보다 높아 '갭투자'가 쉬운 지역으로 꼽힌다. /김지호 기자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갭투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갭투자 관련 업체와 사이트가 온·오프라인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실제 부동산 거래 현장에서는 "최근 갭투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급증하는 갭투자… 대학생도 뛰어들어


    아파트 구매자가 본인은 전·월세로 살면서 다른 곳에 전세 낀 아파트를 '나중에 실제 거주할 계획'으로 한 채 정도 사는 일은 흔하다. 최근 유행하는 갭투자는 적은 자기 돈으로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는 아파트를 여러 채 사들이는 투기 수요이다. 민관을 막론하고 현재 갭투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서울 시내 전체 아파트 거래 중 비(非)서울 거주자가 사들인 비중은 19.5%(7416건)였다.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최대치다. 최신(2015년 말) 기준 서울의 외지인 소유 주택 비중은 14.8%였다. 서울에 살지 않으면서 서울 집을 구매하는 사람이 급증한다는 의미로, 이 가운데 상당수가 갭투자일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회원수 18만명의 국내 최대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는 갭투자에 관한 글이 이달 들어 하루 평균 25건꼴로 올라온다. 갭투자 성공을 '증언'하거나, 갭투자 지역을 추천해 달라는 등의 내용이다. 6일에는 '24세 여대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회원이 "과외 교습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2000만원을 갭투자 하고 싶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시중 서점에는 갭 투자로 수백채 집을 샀다는 내용의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올라 있다.



    갭투자의 주타깃은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KB국민은행 5월 조사에 따르면 성북구(83.3%), 동대문구(81.2%), 구로(80.4%), 중구(80.1%) 등 4개 구는 전세가율이 80%를 넘는다.


    ◇갭투자, 사장 교란… 정부 규제 어려워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무리한 갭투자는 정상적으로는 시장에 참여하지 못할 사람들이 끼어든다는 점에서 '시장 교란 행위'"라고 지적했다.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데, 공급이 정해진 상황에서 갭투자는 비(非)정상적 수요를 만들어내 거래량을 늘리고 가격을 밀어 올린다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집값이 오를 때 갭투자가 더 빨리 집값을 오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며 "최근 투기 수요가 '갭 투자'란 이름으로 강북과 수도권으로 확산,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갭투자는 값이 오를 때 수익률이 높지만, 내릴 때 손실이 크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높다.


    특히 집값과 전세 시세가 동반 하락할 경우가 문제다. 소자본 갭투자자는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되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무리한 갭투자는 세입자의 돈을 걸고 벌이는 '도박'이자 '도덕적 해이'"라며 "늘어난 갭투자가 한순간에 전세금 미(未)상환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로서는 갭투자를 규제할 마땅한 카드를 찾기가 어렵다. 최근 검토 중인 LTV(담보인정 비율)·DTI(총부채 상환비율) 기준 강화 같은 대출 규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갭투자자는 주택 담보대출을 거의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값이 싼 지역에서 주로 이뤄져 '투기과열지구 지정'과도 거리가 멀다.


    박원갑 위원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갭투자가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갭투자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금의 차액(差額·gap)이 적은 아파트를 골라 소액의 투자금만으로 이를 사들이는 투자 기법. 가격이 오르면 투자금 대비 큰 수익을 올리지만 반대 경우엔 큰 손실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