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료 폐지 압박에... 미래부도 통신사도 울상

    입력 : 2017.06.08 09:33

    [국정위 "소외계층·저소득층 위한 방안 이번 주까지 내라"]


    - 미래부 "강요할 법적 근거 없는데…"
    통신업체들 매출 2~3년간 정체… 요금도 자율적으로 정하는 구조


    - 통신사 "저소득 요금제 있는데…"
    모든 가입자 혜택 땐 7조원 소요, 기존 알뜰폰 업체도 타격 예상


    - 분리공시제 도입 여부도 논란
    통신·제조사 보조금 따로 공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휴대전화 기본료(약 1만1000원) 폐지'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에 해당되는 국정기획자문위 소속 최민희 위원(경제2분과)은 7일 브리핑을 갖고 "이 공약은 소외 계층과 저소득층 사용자들을 위한 기본료 폐지가 그 취지"라면서 "이번 주까지 (주무 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에 인하 방안을 가져오라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당초 기본료 폐지 대상이 명확지 않아 혼란이 야기된 데 대해 공약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가 통신 요금에서 기본료를 폐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 미래부와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물론 알뜰폰 업체들까지 난감해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LG전자가 통신 시장의 또 다른 이슈인 보조금 분리 공시제 도입에 찬성 의견을 밝히면서 논란이 스마트폰 제조 업체로도 확산될 조짐이다. 분리 공시제는 휴대전화를 살 때 통신사의 판매 보조금과 제조 업체의 보조금을 따로 공개하는 것. 통신 시장에선 기본료 폐지와 분리 공시제 도입이 현실화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틀간 공약 놓고 공방


    국정기획자문위는 전날인 6일 미래부가 기본료 폐지 공약 이행 대책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최 위원은 이날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부가 기본료 폐지 등 통신비 인하 공약에 진정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미래부 업무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래부가 앞서 '통신 업체에 기본료 폐지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통신 업체 경영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며 기본료 폐지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가 일격을 맞은 것이다. 화들짝 놀란 미래부는 곧바로 이행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통신 업체들의 저항이 의외로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부 관계자는 "스마트폰 요금은 기본적으로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구조"라며 "통신 업체들이 헌법 소원이라도 할 태세였다"고 말했다.



    통신 3사가 정권 초기인데도 기본료 인하에 난색을 보이는 이유는 통신 업체들의 실적이 과거만큼 넉넉하지 않다는 데 있다. 통신 3사 모두 모바일 부문에서 최근 2~3년 사이 매출 정체 상태에 빠진 데다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중)이 6~8% 안팎으로 10% 후반대 영업이익률을 보이는 미국 통신 업체들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료를 일괄 인하할 경우 경영에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 한 통신 업계 관계자는 "통신 3사가 전체 가입자에게 기본료에 해당하는 요금 인하를 단행할 경우 한 해 수익 감소는 무려 7조원대에 이른다"며 "이는 작년 통신 3사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2배"라고 반박했다. 통신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통신 업체들이 독거노인, 장애인, 청년·군인 등을 위한 감면 혜택 요금제를 다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며 "이미 저소득층과 소외 계층을 위한 요금제가 따로 있는데, 또 요금을 내리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통신 3사뿐만 아니라 알뜰폰 업체들도 정부의 통신 요금 인하 방침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30여 곳에 이르는 국내 알뜰폰 업체들은 저렴한 요금제를 내세워 가입자 700만명(올 3월 기준) 시대를 열었지만,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통신 3사가 요금을 대폭 내리면 저소득층이라도 누가 알뜰폰을 쓰겠느냐"고 말했다.


    ◇LG전자 가세하면서 '분리 공시제' 다시 부각


    문 대통령의 또 다른 통신비 절감 공약인 분리 공시제 도입도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올랐다. 최근 LG전자가 방통위에 분리 공시제 찬성 의견을 공식 전달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한발 더 나아가 "통신사에 주는 지원금뿐 아니라, 유통 대리점에 주는 리베이트(장려금)까지도 함께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제조사 보조금을 월등하게 많이 쓰는 삼성전자를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분리 공시제는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보조금을 통신사 보조금과 LG전자 같은 제조사의 보조금을 명확히 나눠서 공개하는 것이다. 분리 공시제를 찬성하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 단체에서는 "제조 업체가 스마트폰 출고가를 비싸게 책정해놓고 선심 쓰듯 지원금을 준 게 아닌지 파악이 가능해진다"며 "이를 통해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 2014년 보조금 상한제와 함께 분리 공시제도 도입하려 했으나 삼성전자·LG전자 등 제조 업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당시 제조업체들은 "제조사 보조금은 일종의 영업 기밀"이라며 "국내 소비자에게 주는 지원금 규모가 공개되면 해외 영업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이병태 KAIST 경영공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해외 매출 비중이 90%가 넘는 제조사들이 국내 스마트폰 출고 가격을 내리기보다는 해외 통신사와 마찰을 피하기 위해 국내 소비자에게 주는 보조금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