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 구직자에 불리... 채용시장 얼어붙을 우려"

    입력 : 2017.06.05 09:27

    [비정규직, 쾌도난마식 해법은 없다] [하·끝] 정규직 전환 잘되려면


    - 모두 만족시키는 해법은 없어
    비정규직 자체가 문제 아니라 남용하는 일부 기업이 문제
    전환 압박하는 건 부작용 낳아


    - 임금 체계 손질, 정규직의 양보 필요
    연공급 대신 직무급 늘리고 低성과자 해고, 임금 경직성 완화… 정규직 유연성 확대 불가피


    최근 한 시중은행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텔러(지점 창구 전담 직원) 직군과 일반 직군 행원들이 서로 비난하는 글을 잇달아 게시하며 논쟁이 벌어졌다.


    은행들은 2007년 이후 비정규직이었던 텔러를 정규직으로 순차적으로 전환시켰는데,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여전하다. 텔러 직군 은행원들은 '일반직보다 일을 더 하면서 돈만 적게 받는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반면 일반직은 '좋은 대학 나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은행에 들어왔는데 텔러와 다를 게 없다'고 불평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주요 국정 과제로 밀어붙일 태세다. 전문가들은 정교하지 못한 접근은 허울뿐인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또 비정규직 해소 정책이 성공하려면 급여 체계 개편과 정규직 노조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비정규직 남용부터 막아라"


    박윤수 KDI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가운데는 파트타이머 주부처럼 필요에 의해 하는 경우도 많다"며 "비정규직 자체가 아니라 '남용'이 문제인 만큼 그에 해당하는 경우부터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규직 전환은 노동 시장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 좋은 정책일 수 있겠지만,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에겐 취업문을 좁게 만드는 정책"이라며 "무조건적인 압박은 사용자로 하여금 사람 뽑는 걸 겁내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속 가능성과 형평성을 고려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며 "당장 성과를 내겠다고 일부 기업 중심으로 전환 작업을 압박하면 공기업과 민간기업 사이 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불평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 임금 체계 바꿔라


    정부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임금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현장에선 바로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용은 보장하되 월급을 거의 올리지 않는 대응을 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비용 구조가 무척 타이트한 상황에서 정규직 전환을 하면서 월급까지 올리라는 건 주주 이익을 지나치게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며 "기업의 의사 결정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연공급 영향이 크다. 정규직은 호봉을 큰 폭으로 올려주는 반면, 비정규직은 거의 올리지 않으면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새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직무급'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직무 난이도, 수준 등을 따져 급여를 책정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확립될 수 있다. 한 노동 전문가는 "직무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임금 테이블을 만들어 적용해야 한다"며 "도입 과정에서 큰 진통이 따를 수 있어 새 정부의 설득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성장성이 정체되는 상황이라 인건비 등의 비용 효율화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성과 연봉제처럼 수익에 인건비가 연동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정규직 양보는 필수 조건


    중장기적으로 정규직 유연성 확대 논의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박윤수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정규직을 보호하면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까지 하는 것은 어렵다"며 "일반 저성과자 해고, 임금 구조 경직성 완화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직적인 부분을 완화시키지 않으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양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했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고용을 보장하면서 임금을 올려주는 정책이 지속 가능하면 좋겠지만, 그 정도 경제 성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모두가 조금씩 직업 안정성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