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재벌개혁 첫 타깃... 재계 "검은 구름 몰려와"

    입력 : 2017.05.29 08:55

    [文정부의 잇단 대기업 때리기]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법 개정 없이 가능한 공약… 공정위 사전조사 마친 듯
    전문가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어… 기업과 재벌 동일시해선 안돼"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다."(26일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이 무소불위의 재벌공화국이 됐다."(28일 김진표 국정기획자문회의 위원장)


    '경총발(發) 비정규직 발언'의 파장이 '재벌 비판'으로 비화하고 있다. 앞서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지난 25일 조찬 포럼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이분법으로 접근하면 갈등만 일으킨다"고 한 발언에 대해 정권 실세들이 잇따라 비판하면서 '대기업 때리기'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28일 오후 서울 통의동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무실에서 김진표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기득권을 정상화해야 한다. 거기엔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재벌 개혁에 대한 의지를 시사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곧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설 것이란 전망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벌 개혁 공약 중 유일하게 법 개정 없이 곧바로 착수할 수 있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와 이른바 '갑(甲)질 횡포'에 대한 조사 준비를 모두 마친 것으로 안다"면서 "자칫 지난해 최순실 사태 이후 6개월 이상 검찰 수사 등에 시달려온 재계가 또다시 공정위 조사에 걸려 흔들릴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 반대하는 것도 아닌데…"


    재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재벌을 두들겨 패는 건 아니다"(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는 유연한 발언이 나오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총 발언 이후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김 위원장의 '재벌공화국' 발언이 나온 28일 재계에서는 "새 정부가 '무소불위' '재벌공화국'이라는 과거 정치적 선동 단어까지 동원해 대기업을 몰아붙이고 있다. 검은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는 느낌"이라는 말이 나왔다.


    또 "정권 초기 재벌 개혁에 대한 반발의 여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대기업을 향해 '잠자코 있으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겠냐"는 해석도 나왔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비정규직 95%는 중소기업 소속이어서 비정규직 전환 문제는 중소기업의 핵심 이슈인데도 갑자기 '재벌공화국' 운운하면서 재벌 개혁 이슈로 몰아가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 자산인 '기업'을 '재벌'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며 "프랑스조차 '실용주의' '작은 정부'로 우회전하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국가 개입주의'로 가겠다는 상황에서 정부가 다른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반발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당장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를 집중 단속할 가능성이 높아 주요 대기업들은 비상 상태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내달 2일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답변 자료에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과 규제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현행법 테두리에서 공정위 재량으로 실태 조사를 강화하고 과징금을 높이면 되기 때문에 첫 타깃이 될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실태 조사를 벌여 현대·한진·CJ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13억~7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조원태 대한항공 당시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당시 혐의가 발견된 한화·하이트진로에 대해서도 제재를 계획하고 있어, 이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다. 공정위는 또 지난 3월부터 45개 그룹의 225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총수 일가와 관련한 내부 거래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현행법상 대기업 계열사가 오너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주면 제재 대상이 되지만, 공정위는 지분율 기준을 20%로 낮추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어서 대기업들은 더욱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