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일자리 개혁'... 근로 시간·장소 통념을 깨다

    입력 : 2017.05.24 09:11

    [일자리 절벽시대] [中] 다양한 근로 형태 도입한 일본


    - 日 기업 절반 '限定 정사원' 도입
    하루 5시간 週4일 근무 여사원, 정년·임금·복지는 정규직과 동일


    -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이드라인 제시
    상여금과 직책 수당 外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금지


    - 도요타 직원 3분의 1 재택근무
    화상 회의 등 스마트워킹 장려


    마세 지즈코(38·여)씨는 일본 도쿄 신주쿠의 유니클로 매장에서 '한정(限定) 정사원'으로 일한다. '한정 정사원'이란, 직종·근무시간·근무지역 등이 한정돼 있는 정규직이다. 정년·임금·복리후생은 일반 정규직과 같다. 마세씨는 일주일에 4일, 하루 5.5시간(오전 9시~오후 3시·휴식 30분)만 이 매장에서 일한다. 그는 "집에 일찍 와 초등학생인 딸을 돌볼 수 있고, 정년 보장에다 근무지 이동이 없어 업무 효율도 휠씬 좋다"고 말했다.


    한정 정사원은 일본 정부가 적극 권장하고 있는 이색 정규직이다. 근로자는 고용 안정과 일·가정 양립 등을 동시에 누릴 수 있고, 회사는 충성도 높은 '파트타임 직원'을 활용할 수 있다. 일본 기업의 절반 이상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 도쿄의 한 유니클로 매장에서 직원이 옷을 정리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근무시간과 지역을 직원이 원하는 대로 한정해 일하면서도, 정년이 보장되는 '한정 정사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블룸버그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던 일본도 일자리 문제는 국가적 이슈였다. 2009년 대졸 취업률이 60%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올초 97% 수준으로 완전 고용 상태로 회복했다. 최근엔 정규직 증가폭이 비정규직을 앞지르고, 올 1분기에는 비정규직 숫자는 줄어들었다. 배경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자리 문제를 사회문제가 아닌 '경제 이슈'와 결부시켜, '생산성 확대' 개념을 적용한 개혁이 있다. 우광호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지금 우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분화해 무조건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본은 정규직을 세분화하고, 비정규직은 처우를 개선해 다양한 형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일자리 문제는 '노동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


    아베 총리는 2015년 '강한 경제'를 천명하며 '근로 방식의 개혁'을 실천 방안으로 제시했다. 일자리 문제를 노동·사회 개혁 문제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경제 개혁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당시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고, 1억 인구가 모두 활약하는 강한 경제(1억 총활약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다양한 근로 방식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일련의 개혁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한 달 만에 아베 총리가 의장을 맡은 '1억 총활약 회의'가 신설됐고, 8개월간 9차례 회의를 마무리한 지 3개월 만에 '근로방식 개혁 실현 추진실'이 설치됐다. 이후 6개월간 10차례 회의를 열어 '실행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의 오학수 박사는 "일본의 '근로 방식의 개혁'은 근무 형태·직장 문화·라이프스타일 등을 근본적·총체적으로 바꾸자는 취지"라며 "비정규직은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은 과도한 노동을 시정하는 등 다양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모든 구성원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눠 갖자는 '경제 개혁'"이라고 말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비정규직 처우 개선


    일본 유명 의류 기업 아오키(AOKI)는 작년 9월, 60세 미만의 유기 계약 사원 420명(전체의 7.3%)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하루 8시간 근무, 월급·퇴직금·정년 등은 정사원과 똑같지만, 승진은 매장 관리자까지로 제한된다. 이 회사는 생애주기에 따라 '일하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다. 20~30대엔 정사원으로 입사했다가 출산 이후엔 '한정 정사원'으로 근무지·시간을 정해 일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아르바이트생이 됐다가 다시 정사원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작년 12월 제시한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기본급·상여금·수당·복리후생·훈련 등에서 정규직과의 격차를 줄일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특히 경험과 능력, 업적·실적, 근속연수가 동일하면 시간당 수당·복리후생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했다. 다만 상여금·직책수당에서 업적·공헌에 따른 차등은 인정했다. 일본 정부는 이 내용을 구체화해 2019년 법 시행을 목표로 올해 안에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함으로써,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정규직을 더 채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택 근무 활성화… '스마트워킹'으로 효율성 추구


    닛산 본사에서 근무하는 무라카미 미카코(여)씨는 한 달에 5일을 재택 근무하며 육아를 병행한다. 인터넷 메신저인 '스카이프'로 팀원들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퇴근할 땐 하루 성과를 이메일로 공유한다. 무라카미씨는 "평가·승진은 성과에 따라 공평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집에 있다고 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재택 근무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장에 150만엔(약 15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재택·유연 근무를 권장하고 있다. 도요타는 최근 전 직원 중 3분의 1에 재택 근무를 허용했다. '좋은 일자리'와 '근로 효율성'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일본 노동법 전문가인 정영훈 한양대 법학연구소 박사는 "일본은 청년을 비롯해 간병·육아에 매인 사람들이 노동 조건이 열악한 직장을 기피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해왔다"며 "우리나라도 실업자 중 절반이 대졸 이상이지만,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각한 상황이라 일본식 개혁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