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兆 클럽' 작년 영업익 73조... 고용은 1만5000명 줄어

    입력 : 2017.05.23 09:04

    [일자리 절벽시대] [上] '좋은 일자리'가 사라진다


    - 4차 산업혁명·스마트팩토리…
    5년간 신규 일자리 272만개 중 年3000만원 이상 정규직은 8%뿐


    - 5000억 들인 공장, 고용은 10여명
    대부분 자동화 로봇들이 업무
    정규직은 해고 어려워 채용 기피


    세계 최대 규모(6000㎥)인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1 고로(高爐)는 하루 1만5000t, 연간 530만t의 쇳물을 생산한다. 그런데 이런 대형 시설의 근무자는 단 8명에 불과하다. 철광석·석탄 등 원료를 집어넣는 작업, 쇳물을 다음 공정으로 운반하는 작업, 고로 운전을 컨트롤하는 작업 등 대부분 공정은 로봇이 담당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규모의 쇳물을 생산·관리하기 위해서는 20명 가까운 인력이 필요했지만, 작업 공정이 자동화·첨단화됨에 따라 인력이 줄어든 것이다. 세계 최고 철강사인 포스코의 전체 고용 인원은 지난해 1만6584명으로, 10년 전인 2006년에 비해 1000여 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포스코뿐 아니다. 최근 국내 많은 대기업이 자동화·로봇화 때문에 시설 투자를 늘려도 '투자=고용 증대'란 등식이 성립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 투자가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 증권사들도 인터넷 뱅킹 등에 밀리면서 대규모 감원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다 보니 우리 고용 시장은 절대적인 일자리 부족 못잖게 '좋은 일자리'의 태부족 현상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1조 클럽 상장사, 매출·영업이익 늘어도 1만5000명 줄였다


    본지가 기업 정보 사이트 '재벌닷컴'과 함께 지난해 매출액 1조원 이상 상장사 182곳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 업체들의 직원 수는 100만2326명으로 1년 사이에 1만5000명이 줄어들었다. 이 기업들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197조원, 73조원이다. 1년 사이 매출은 8조3000억원, 영업이익은 6조5000억원이 늘었는데 직원 수만 감소한 것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1년 사이 3698명이 줄었는데, 영업이익은 25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첫 이익 1조원을 돌파한 대기업 A사. 4년 전에 비해 영업이익은 4배 늘었지만 고용 총인원은 7900명에서 7600명으로 4%(300명) 감소했다. A사 관계자는 "연간 투자액이 3500억원에 이르지만, 국내 투자는 기술·자동 설비 위주"라며 "고용과 직결된 공장 증설 등은 대부분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채용 규모를 밝힌 것은 2015년이 마지막이다. 당시 삼성은 고졸과 대졸 출신의 신입·경력 직원을 모두 포함해 1만4000명을 뽑았다. 3년 전인 2012년만 해도 삼성은 2만6100명을 뽑았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5년간 늘어난 일자리 272만개, 연봉 3000만원 이상은 21만개(8%)뿐


    우리나라에서 연봉 3000만원 이상 되는 '좋은 일자리'는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있을까. 본지가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5년간 새로 생겨난 일자리 중 '좋은 일자리'(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연봉 3000만원 이상 정규직) 비중은 8%에 불과했다. 지난 5년 사이에 총 272만9773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이 중 '좋은 일자리'는 21만8631개란 것이다.


    전체 일자리 중 '좋은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에는 9.8%였으나, 2015년에는 9.7%로 떨어졌다. 한경연 우광호 박사는 "세계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아 연간 대졸자만 50여만명(휴학생 포함)이 쏟아지는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쇠퇴, 청년 실업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앞에서 더욱 심각해지는 일자리 감소


    고용 창출 능력의 감퇴는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스마트 공장 등과 맞물려 더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경북에 있는 중견 기계부품회사는 지난해 스마트 공장 인증을 받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구매나 자재 관리, 재고 파악 등의 작업이 대부분 시스템으로 자동화되면서 상당수 직원들의 할 일이 없어졌다"며 "그렇다고 정규직을 해고할 수는 없어 업무 보정과 함께 신규 채용을 크게 줄이는 식으로 중·단기 인력 수급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초봉 3000만원의 인기 중견 기업이다.


    대규모 장치 산업인 석유화학 업체의 고용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롯데케미칼은 1000여 명이 근무하는 전남 여수 공장에 2530억원을 들여 생산 설비를 늘리고 있지만, 추가 고용 인원은 수십명이 채 안 될 전망이다. 800여 명이 근무하는 한화토탈의 대산 공장도 5395억원의 시설 투자가 진행 중이지만 추가 고용 인력은 10~20명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에서 대부분 로봇들이 업무를 대신하고 사람들은 거의 없는 석유화학 생산라인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닥쳐올 제조업의 미래를 적나라하게 예고해준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취약점인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와 중산층 복원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한다"면서 "최근 일본과 독일에서 과감한 규제 개혁과 사회 대타협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고 있는 사례를 적극 흡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