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경유 승용차 완전 퇴출... "전면 금지는 무리" 업계선 반발

    입력 : 2017.05.22 09:01

    文대통령, 미세먼지 대책으로 개인용 경유차 규제 공약 내세워
    적어도 2023년 판매 중단해야… 자동차업계·정유업계 긴장
    전문가들 "인센티브 정책으로 친환경차 구입 장려가 현실적"


    "2030년까지 개인용 경유 승용차 운행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을 두고 자동차업계와 정유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그렇잖아도 2015년 하반기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논란 이후 경유차(디젤차) 판매량이 줄고 있는데 이 공약이 현실화하면 타격이 더 커질 수밖에 없고, 매출 중 20~30%가 경유인 정유업계로선 매출액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30년부터 도로에서 경유 승용차 운행을 금지한다면 적어도 2023년부터는 경유 승용차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 "과연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에만 신규 등록한 개인용 경유 승용차 대수는 61만대에 달하며 모두 합치면 501만대나 된다.


    ◇미세 먼지 주범으로 몰린 경유차


    문 대통령이 전기차 등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고 개인용 경유차 2030년까지 전면 운행 금지 공약을 내건 이유는 미세 먼지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수도권 미세 먼지 배출원 중 29%가 경유차에서 나온다. 경유를 쓰는 건설기계가 22%를 차지, 합치면 경유를 쓰는 디젤 엔진이 내뿜는 미세 먼지가 수도권 미세 먼지의 51%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경유차 비율을 줄이는 게 급선무라 보고 생계용 경유차에는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해 개인용 경유차만 규제하기로 나선 것이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정책부본부장을 맡은 홍종학 전 의원은 "소상공인 문제가 있어 생계형 경유차는 제외하고, 개인용 승용 경유차에 대해 2030년까지 운행을 전면 금지하기로 공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공약이 현실화되면 디젤차 판매량 감소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폴크스바겐 파문 이후 '클린 디젤'이란 이미지가 사라져 경유차 판매량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전체 신규 등록 자동차 중 경유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52.5%로 최고조에 이른 후 2016년 49.7%로 내려앉았다. 올 3월까지는 그 비율이 더 떨어져 46.3%(22만5267대)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보통 차를 구입하면 7년 정도 탄다고 보는데, 2030년부터 경유차 운행이 전면 금지되면 적어도 2023년부터는 경유차가 아예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전체 자동차 라인업 중 국내에서 디젤 모델 판매 비중이 높은 수입차 업체들과 디젤 엔진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위주인 쌍용자동차 등은 타격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전 세계 디젤차 규제 강화


    사실 디젤차에 대한 규제 강화는 전 세계적 추세다. EU가 지난 2월 디젤차로 인한 대기오염의 시정을 촉구하는 경고를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에 보낼 정도다.


    서울 남산타워 인근에 정차 중인 관광버스들이 시동을 끄지 않은 채 공회전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세 먼지가 다량 배출된다. 서울시가 노후 경유차 도심 진입 규제와 관광버스 공회전 단속을 추진하는 이유다. /장련성 객원기자


    영국은 올 10월부터 도심의 혼잡 통행 구역에서 혼잡 통행료와 함께 노후 경유차에 대한 '독성 요금'을 징수하기로 했고,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주도인 슈투트가르트는 디젤 엔진의 배출 가스 규제 기준을 높인 '유로6'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유차 도시 내 운행을 금지하는 정책을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경유·가솔린 차량을 전면 판매 금지하기로 했고, 독일·프랑스·스페인 등도 주요 도시에서 2025년부터 디젤 차량 운행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자동차업체 '볼보'도 2024년부터 디젤 엔진 차량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스위스의 UBS은행은 "디젤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13.5%에서 2025년 4%로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경유차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경유 디젤차에 대한 규제가 보편화된 건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자동차업체들은 새로 출시하는 차량에는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한 유로6를 적용하고, 배출가스 저감 기술 개발에 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경유차 금지 속도 조절 필요"


    아직 새 정부의 경유차 퇴출 방침에 대한 중장기적 세부 계획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업계는 벌써부터 반발하고 있다. 노르웨이 등은 인구도 적고, 이미 친환경차 보급률이 높아 경유차 규제를 본격적으로 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2030년 운행 금지는 결국 2020년 이후에는 경유차를 판매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따지고 보면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도가 센 규제를 내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방적인 전면 금지가 아니라 인센티브 정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경유차를 줄이고 친환경차 구입을 장려하는 정책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전면 금지가 아닌 수도권 등 대도시 위주의 금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책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새 엔진을 개발하려면 자동차 업체는 5~6년 동안 수백~수천억을 쏟아붓는다"며 "갑작스러운 전면 금지는 기업 입장에서도 투자금을 날리는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노후 경유차의 조기 폐차 촉진 등의 정책은 중요하지만, 2030년까지 개인용 경유 승용차를 퇴출한다는 전략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자동차는 철저히 경제적인 산물이고 개인의 욕구에 따라 시장 논리로 구입되는 만큼 인센티브와 점진적 도입 등을 고려한 세밀한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