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갑질 엄벌" 공언... 재계 '규제 드라이브' 우려

    입력 : 2017.05.11 09:48

    [대기업 정책]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 시정하려 정부기관 총동원해 압박할수도
    금산분리 강화·재벌범죄 무관용… 비우호적 공약도 대기업엔 부담
    외국 투기자본, 경영 간섭 가능한 상법개정안이 재계의 최대 이슈
    법인세 인상도 '뜨거운 감자'
    재계 "경영 자율성 지나친 침해… 일자리 축소·투자 위축 부를 우려"


    문재인 대통령의 대기업 관련 공약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으로 압축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의 12가지 약속 중 '공정한 대한민국―경제 민주화'가 둘째로 등장한다. 공약집에는 "삼성 등 소수 재벌만을 위한 재벌에 의한, 재벌의 사회가 아닌 국민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경제 민주화를 살아있는 헌법 이념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적시돼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재벌 가운데 10대 재벌, 그중에서도 4대 재벌(삼성·현대차·SK·LG)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연히 재계에서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부 공약은 국회 입법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 달라지지 않겠지만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해 일자리 축소,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항목도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황제 경영·불공정 갑질은 뿌리 뽑겠다"… 경영 자율권 침해 우려도


    문 대통령 측이 경제 민주화 차원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공약은 '을지로위원회(을을 지키는 위원회·가칭) 신설'이다.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등을 주축으로 범정부 기관을 만들어 납품 단가 후려치기 같은 재벌의 갑질 횡포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강화하고 엄벌하겠다는 것이다. 위원회를 통해 기업에 대한 강제 조사권과 수사권을 동원할 수 있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과 거래가 많은 대기업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처지에서 가장 긴장하는 부분은 상법 개정 관련이다. 공약에는 당장 모기업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 대표 소송제와, 현재 기업이 자율로 선택할 수 있는 전자 투표제를 법률로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한 5대 그룹 관계자는 "다중 대표 소송제도는 투기 자본이 모회사 소수 주주 지위만 확보하면 기업 집단 전체의 경영 간섭이 가능하고, 전자 투표제는 외국계 투기 자본이 온라인 공간에서 왜곡된 정보로 일반 투자자들을 부추겨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배력 남용 막는다"… 적대적 M&A에 쉽게 노출 우려


    공약에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와 손자회사 지분율을 규제하는 내용도 있다. 현재 지주회사는 상장사 지분을 20%, 비상장 회사는 40%까지 보유해야 한다. 이를 각각 10%포인트씩 올려 지주회사를 이용한 재벌 총수 일가의 손쉬운 경영 승계나 지배력 남용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산업 자본의 금융사 지배를 더욱 까다롭게 하는 '금산 분리 강화'도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금융이 재벌의 금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재벌이 장악한 제2 금융권을 점차적으로 재벌의 지배에서 독립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 정부는 재벌 범죄 무관용 원칙을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횡령이나 배임 등 경제 범죄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도 주요 공약 중 하나다. 10대 그룹 법무팀 임원은 "일률적으로 재벌이라고, 또는 경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사면 제한 등을 하는 것은 불공평한 법적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인세 올리겠다"…글로벌 조세 경쟁력 약화 우려


    '법인세'도 뜨거운 감자다. 새 정부는 공약집에서 "재원이 부족할 경우 법인세 최고 세율을 원상 복귀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는데, 이를 다시 25%로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대기업 10~17%, 중소기업 7%로 적용되는 최저한세율(기업들이 최소한 내야 하는 세금)도 초고소득 법인에 한해 높이겠다는 공약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대부분 국가에서 법인세율을 낮추면서 조세 경쟁을 하고 있으므로 법인세율을 올리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조세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기업 부담으로 작용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 일각에는 "문재인 정부의 전신 격인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를 추진하는 등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정책도 나왔다. 규제를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하고, '법령에 근거 없는 민간 기업 기부금 징수 행위 금지 추진' 등의 공약이 지켜진다면 경제는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