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갈린 성적… 한화·CJ 약진, STX·이랜드 내리막

    입력 : 2017.05.02 09:18

    [공정위, 30대 그룹 자산·매출 공개… 10년前과 비교해보니]


    - 공격적 M&A로 쑥쑥 큰 기업들
    한화, 태양광 인수로 12위→8위
    CJ, 문화·물류 힘입어 19위→14위
    현대백화점도 27위→22위 도약


    STX·이랜드는 M&A 실패… 재계 30위권 밖으로 밀려나
    4대 그룹, 전체 순익 73% 차지… 대기업 간에도 양극화 심해져


    현대백화점은 요즘 유통업계에서 인수·합병(M&A)의 강자로 통한다. 2012년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의류업체 한섬과 가구업체 리바트를 인수한 뒤 해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으며, 올해는 SK네트웍스의 패션부문을 3000억원대에 인수, 국내 패션업계 '빅4'로 뛰어올랐다. 이런 성공적인 M&A 덕분에 현대백화점은 10년 전 재계 27위에서 올해 22위로 다섯 단계 올랐다.


    STX는 2007년 24위에서 2012년 13위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대부분 무리하게 빚을 내 사들인 회사가 많았고, 업황이 침체되자 이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이제는 사실상 대기업 집단 순위에서 사라진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일 공개한 '대기업 집단'(자산규모 10조원 이상) 순위를 바탕으로 본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과거 10년간 30대 그룹 명단을 비교 분석했더니, 4대 그룹은 변동이 없었으나 나머지는 인수·합병(M&A)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순위가 요동쳤다. 공격적인 M&A가 대기업 집단 성쇠를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10년 새 재계 지도 바꾼 건 'M&A'


    과거 '문어발식' 투자로 규모를 키웠던 대기업들은 최근에는 인수·합병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서구식 전법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안정적인 '캐시카우(현금 창출력이 좋은 핵심 사업)'를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신사업에 투자한 기업들이 급성장했다.


    반대로 현금이 부족한데도 무리하게 기업 인수를 추진한 그룹들은 추락했다.공격적 M&A로 순위를 끌어올린 대표 기업들은 한화, CJ, 미래에셋, 현대백화점 등이 꼽힌다. 한화는 2010년 이후 중국과 독일 태양광 기업을 잇따라 사들였고, 2년 전엔 삼성에서 방산·화학사 4개 업체를 2조원대에 인수했다.


    CJ 역시 10년 사이 식품사업에서 창출한 안정적인 현금을 기반으로, 엔터테인먼트와 택배라는 문화·물류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육가공업체 하림은 최근 해운사인 팬오션을 1조원에 인수하며 이번에 30대 그룹에 처음으로 편입됐다. M&A에 가장 공격적이었던 롯데는 자산 규모를 10년 사이 70조원 가까이 늘리면서 4위(LG·112조원)와 격차를 바짝 좁힌 5위에 올라 있다. 미래에셋은 최근 대우증권을 인수하며 20위까지 뛰어올랐다. 반대로 금호아시아나(9위→18위), STX, 이랜드(24위→30위권 밖)등은 무리하게 연속적인 M&A를 했다가 인수 기업을 다시 매각하면서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최종학 서울대 교수는 "대형 M&A 이후엔 재무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런 기업들은 성급히 과식하다 탈이 났다"고 말했다.


    30대 그룹 순위에서는 선제적 투자로 크게 성공한 기업들도 눈길을 끌었다. 신세계는 국내 최초 대형마트·프리미엄 아웃렛·복합쇼핑몰 등을 세우면서 올해 처음 재계 10위에 올랐다.


    효성은 장기적인 기술 투자가 성과를 내며 지난해 역대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한진과 현대그룹은 핵심 사업인 해운업의 몰락으로 그룹도 쇠락했다. 1987~2000년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경영권까지 넘어가면서 올해에는 아예 대기업 집단에서 제외됐다.


    ◇4대 그룹 자산·매출 비중 커져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의 비중은 최근 5년간 점점 커져 '대기업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발표된 4대 그룹의 자산·매출·순이익은 30대 그룹 전체 자산의 각각 53%, 56%, 73%를 차지했다. 자산과 매출 비중은 2013년에 각각 50.8%와 53.2%였지만 올해 52.7%와 56.2%로 올랐다. 지난 5년간 상위 11~30위 그룹 자산이 6.6% 증가한 사이, 4대 그룹 자산은 20.8% 늘었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4대 그룹 비중이 높아지는 건 IMF 위기 이후 이들이 수출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높인 글로벌 기업으로 체질 개선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과 사업 재편이 기업 운명을 가른다"며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구조에선 영원한 1등도, 꼴찌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