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도시바 인수전... SK하이닉스 비장의 카드 빼드나

    입력 : 2017.04.18 09:20

    [대만 훙하이 다크호스 급부상에 승자 예측 못할 5파전 양상]


    훙하이 1차 입찰서 3조엔 베팅, 경쟁사들보다 10조원 이상 많아
    애플·소프트뱅크와 연대도 추진
    도시바와 합작 웨스턴디지털은 "독점 교섭권 안주면 법적 대응"
    '일본 기업 연합' 목소리도 여전
    SK하이닉스, 2조엔 제시 이어 본입찰서 가격 대폭 올릴 가능성


    일본 최대 반도체 업체인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인수전이 혼전(混戰)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29일 1차 입찰 마감 직후만 해도 한국 SK하이닉스와 미국 반도체 기업 웨스턴디지털, 브로드컴의 3파전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대만 훙하이그룹이 경쟁사들보다 10조원 이상 높은 가격을 적어 내면서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훙하이는 미국 애플과 일본의 대표 IT(정보기술) 기업 소프트뱅크까지 끌어들이며 세를 불리고 있다. 여기에 도시바와 일부 공장을 함께 운영해온 미국 웨스턴디지털은 동업 관계를 내세워 독점 교섭권을 요구하고 나섰고, SK하이닉스도 다음 달 본입찰에서 내놓을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 복잡하게 만든 훙하이의 승부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5일 "도시바 매각 협상이 혼돈스러워지고 있다"면서 "누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와 웨스턴디지털·브로드컴·훙하이·일본 기업 연합 등 5개 후보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 훙하이는 막대한 자금력과 강력한 파트너를 앞세워 판을 뒤흔들고 있다. 훙하이는 1차 입찰에서 인수가로 예상보다 10조원 이상 많은 3조엔(약 31조5000억원)을 적어 낸 것으로 알려졌다. 훙하이는 일본 내부에서 제기된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아이폰 조립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온 애플을 끌어들인 데 이어 중국 대표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 출범의 산파 역할을 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에게도 구애의 손짓을 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궈타이밍 훙하이 회장을 '진정한 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지난해 훙하이가 전자업체 샤프를 인수할 때도 손 회장이 일본 은행의 투자를 주선해줬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 회사가 손잡으면 단숨에 최우선 후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은 기존 계약을 근거로 도시바를 압박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1993년부터 도시바와 미에현 욧카이치공장을 합작 운영하고 있으며, 반도체 기술도 일부 공유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지난 9일 도시바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합작 계약에서 상대방의 승인을 구하지 않고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면서 "독점 교섭권을 주지 않으면 법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시바는 외부적으로는 "반도체 사업 부문 분사 전에 매각 추진 사실을 미리 알렸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오랜 파트너의 도발에 적잖이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일본 언론들은 "웨스턴디지털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본입찰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와 재계에서는 여전히 '일본 기업 연합'을 만들어 도시바를 인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남아 있다. 도시바의 주고객인 후지쓰·후지필름홀딩스, 도시바에 장비를 납품하는 미쓰이그룹 등이 주축이 돼 자금을 모으면 도시바를 해외에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시바에는 희소식이지만, 실적 변동이 심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단순 투자 목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 입찰 가격 대폭 높일 수도


    SK하이닉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5위인 SK하이닉스는 도시바를 인수하면 단숨에 시장 점유율 2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1차 입찰에서 해외 투자자와 손잡고 2조엔에 이르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그룹의 미래로 삼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본입찰에서는 입찰 가격을 대폭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지난 13일 "지금 진행되는 도시바 입찰(1차 입찰)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입찰이 아니기 때문에 금액에 큰 의미가 없다"면서 "본입찰이 시작되면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추가로 투자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직접 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바는 5월 본입찰을 진행한 뒤 개별 협상과 실사를 거쳐 늦어도 6월 말까지는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