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매출 400兆 늘 때 中企는 오히려 10兆 줄어

    입력 : 2017.04.18 09:12

    [중기發 제조업 공동화] [2] 공장 놀리는 中企


    대기업들 글로벌 아웃소싱 늘려 中企에 수출 증대효과 안퍼져…
    공장 가동률 50% 미만 수두룩


    지난 3일 인천 남동공단의 배관제조업체 S사(社)의 제조공장. 대형 공작 기계 8대와 수십 대의 소형 기계들이 공장 내부를 채우고 있었지만 공장 특유의 쿵쾅거리는 소음은 없었다. 생산 기계의 절반가량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풀가동하려면 40~50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이날은 직원 6~7명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이 회사 매출은 한때 40억원대에 육박했지만 작년에 반 토막 났고 올해는 수주 물량이 더 줄어 공장가동률이 30%로 뚝 떨어졌다. 하모 대표는 "대출받아 한 대에 수억원씩 하는 공작기계 8대를 마련했는데 그냥 놀리고 있으려니 한숨만 나온다"며 "대기업 하청 물량이 줄면서 한 달에 800만원씩 내야 하는 은행 이자도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수출은 3개월 연속 두 자릿수의 증가세를 보이며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소 제조업체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대기업 수출이 늘어도 그 온기가 중소기업으로 퍼지지 않는 것이다. 대기업 수출이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이끌던 성장모델이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있다.


    17일 본지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함께 2007~2016년 국내 상장회사의 매출·영업이익을 전수(全數) 조사한 결과, 상장 대기업(242개)의 전체 매출 총액은 2016년 1061조6240억원으로, 10년 전(당시 593조2670억원)에 비해 80% 정도 늘었다. 영업이익은 10년 전보다 20조원 이상 많아졌다. 반면 상장 중소기업(747개)의 매출 총합은 작년 39조3970억원으로 10년 전(당시 49조5030억원)보다 오히려 줄었다. 영업이익은 당시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중기 공장가동률 여전히 부진


    올해 우리나라 경제는 수치상 크게 호전됐다. 작년과 재작년에 걸쳐 2년 연속 감소했던 수출이 올해 반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수출액은 489억달러(약 55조5750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7%나 늘었다. 주식 시장도 호황이다. 연초 202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 지수는 박스권을 뚫고 2150까지 뛰었다.


    하지만 중소 제조업체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침체 상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도에 있는 시화 멀티테크노밸리(MTV) 단지에는 빈 공장 부지가 이곳저곳 눈에 띄었다. 대로변마다 '공장 임대한다'는 현수막이 즐비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홍병진 경기서부지부장은 "공장을 지어봐야 투자자금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빈 땅으로 놀리는 곳이 많다"고 했다.


    지난 3일 인천 남동공업단지의 한 공장에 있는 파이프 절삭 기계들이 전원이 꺼진 채 가동되지 않고 있다. 직원 2~3명만이 공장 내 기계 일부를 가동하며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수도권 대표 공업단지인 남동·반월·시화단지의 평균 공장가동률도 정상가동률(80%)에 못 미치는 70~75%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고용인원 50인 미만 영세기업은 가동률이 50%대로 뚝 떨어진다. 남동공단(54.8%)을 비롯해 온산(56.7%)·광양(54.5%)·대불(46%)·오송(44.3%)·석문(45.5%)·군산(49.5%) 등 주요 산업단지마다 폐업 위기에 직면한 영세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글로벌 소싱으로 낙수(落水) 효과 소멸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글로벌 소싱(sourcing·조달)이 일반화되면서 국내 중소기업에 돌아오는 '낙수 효과'가 급격히 소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국 부품업체에 매달리지 않고 전 세계 중소 업체들을 대상으로 부품을 구매하는 글로벌 공급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동공단의 플라스틱 밸브 생산업체 D사는 올 초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다음 달부터 추가 공급을 하지 말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 김모 대표는 "납품 단가를 깎겠다고도 해봤지만 (대기업에서) 앞으로 중국산 부품을 쓰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해서 손쓸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최근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포스코 등 4개 대기업의 14년치(2001~2014년) 실적이 중소 협력업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더 이상 낙수 효과는 없다'는 결론이 났다. 삼성전자 매출이 1% 늘면 1차 협력사는 0.56%의 낙수효과를 누리지만 2차 협력사(0.07%), 3차 협력사(0.005%)로 갈수록 낙수효과가 급격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배종태 카이스트 교수(경영공학부)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한 곳만 쳐다보기보다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쌓아 국내외 여러 거래처를 확보할 정도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역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기의 자생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