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中 규제 푸는데... 한국만 2년 연속 늘렸다

    입력 : 2017.04.10 08:52

    [세계경제포럼의 '정부 규제로 인한 기업부담 지수' 조사]


    - 트럼프 'Two for One'
    규제 1개 만들면 규제 2개 없애


    - 아베의 '규제 프리존'
    도쿄·오사카·오키나와 등 17곳 드론·원격의료 등 자유롭게 시험


    - 국회에 발목 잡힌 한국
    "규제 풀면 대기업 혜택" 주장에 정부 규제 최근 오히려 늘어


    최근 핀테크(금융+IT기술) 전문 벤처업체 A사 김모(35) 대표는 '금융회사 이자 비교'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금융감독원을 방문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2010년 도입된 행정명령 '1사 전속 주의'를 위반한다는 이유에서 사업 등록을 거부당한 것이다. 대출 시장 과당경쟁을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된 이 규제는 대출상담사는 1개 금융사 상품만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해외에서는 수없이 많은 대박이 터지고 있는 금융상품 비교 앱이 이 규정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만 씨도 뿌리지 못하고 있다"며 "수년간 많은 업체가 개정을 요구했지만 금융당국은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신(新)산업 창출' 경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으나, 한국만 각종 규제에 발이 묶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본지는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 중 '정부 규제가 기업에 주는 부담(burden of government regulation)' 지수 변화를 추적·조사했다. 그 결과 한국은 2015년 3.2, 2016년 3.1, 2017년 3.0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1~7 점 사이에서 점수가 낮을수록 정부 규제가 강하다는 뜻이다. 미국은 같은 기간 3.4 → 3.6 → 4.0, 일본은 3.5 → 3.6 → 3.6으로 정부 규제가 완화되고 있었다. 중국도 '규제 지수'가 2016년 4.0에서 올해는 4.1로 올라, 정부 규제가 완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만 뒷걸음


    이런 규제 완화 흐름은 미국·일본만의 상황이 아니다. 같은 분석에서 영국과 독일 등 주요 산업 국가들도 최근 지속적으로 정부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영국은 2015년 핀테크 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새로운 금융상품은 규제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제도(Regulatory Sandbox)까지 도입한 바 있다. 김현종 한경연 산업연구실장은 "최근 전 세계 기조는 각국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한 규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용해주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가고 있지만 한국에선 규제를 풀면 대기업만 혜택을 본다는 반론 때문에 '규제 완화'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드론으로 신발도 배달하는데… ‐ 일본 지바에 있는 신발회사 크록스재팬 매장에서 드론(무인기)이 신발 한 켤레를 배달하는 모습. 드론 관련‘국가전략 특구’로 지정된 일본 지바에선 드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들을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험할 수 있다. /블룸버그


    미국·일본 등의 규제 완화 추세는 최근 더욱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후 새로운 규제 1개를 도입하면 기존 규제 2개를 없애도록 하는 '투 포 원(Two for One)' 규정을 도입했다. 또 백악관 안에 '미국혁신국(Office of American Innovation)'을 설치해 실세인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에게 맡겼다. 미국 혁신국의 주요 업무는 기업들로부터 신사업 아이디어를 접수한 후, 관련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역시 최근 '국가전략 특구제도'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도쿄와 오사카, 오키나와 등 17개 지자체를 국가전략 특구로 지정해, 드론(무인기)과 원격의료 등 신사업의 경우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시험할 수 있도록 했다.


    '드론 특구'로 지정된 지바시에선 드론을 이용한 택배가 시험 운영에 성공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2년 내 지바시에서 '드론 택배'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유명무실한 우리의 규제 개혁… 성과가 없다


    경쟁국들이 규제 완화에 성과를 내고 있지만, 한국의 규제 완화 정책은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국가전략 특구제도'와 유사한 '규제프리존' 법안을 20대 국회에 제출했지만 1년 동안 논란만 거듭하면서 계류 중이다. 일부에서 "규제 완화의 과실이 대기업에 갈 수 있다는 주장 때문에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1개의 규제를 도입하면 1개를 없애야 한다'는 규제 총량제 역시 2004년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 입법으로 발생한 규제에만 한정하는 바람에 국회에서 더 많은 규제 법률이 쏟아지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조현승 산업연구원 서비스산업연구실장은 "기존 제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한다"며 "규제 총량제도 건수가 아니라, 총비용으로 계산해서 실질적인 '규제 완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