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보내는 경고음 소진 증후군, 마음에 대한 정기 검진 필요

  •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허휴정 교수

    입력 : 2017.03.30 13:25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건강증진의학과 허휴정 교수

    금융회사에서 민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워킹맘 소진씨는 최근 들어 부쩍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는 때가 많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을 대할 때면 짜증과 울화가 한꺼번에 치밀어 오르다가도, 가끔은 멍한 상태가 되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마치 자신이 일하는 기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자주 머리가 아프고, 늘 소화가 잘 안되고, 잠도 잘 못 자서 병원을 찾기도 했지만, 뚜렷한 원인 없이 그저 신경성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밀린 업무 때문에 매번 늦게까지 야근을 하지만 직장에서는 아무런 성과와 보람을 찾을 수가 없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기쁘지가 않다.


    일과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동시에 소진씨를 짓누르지만, 모든 것을 해내기에는 몸과 마음이 늘 피곤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동안 직장에서 쌓아온 모든 성과들이 물거품이 되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도 지게 되어 승진하지 못하게 될 까봐 잠시라도 쉬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 지금 소진씨는 앞으로 나아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은 상태인 것 같다. 여기서 멈추면 넘어지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피로 사회"를 살고 있는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소진씨와 같은 모습을 정신과적으로는 "소진(Burn out)상태"라고 부른다. 소진증후군이란 주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높은 기대와 목표 아래 장기간 강도 높은 업무량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서 나타나는 일련의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일컫는다.


    소진 증후군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 늘 지치고 피로한 느낌


    심리적 : 심적으로 탈진하거나 고갈된 느낌, 무력감, 피곤함, 활력이 떨어지는 느낌, 잦은 짜증과 분노


    신체적 : 두통, 요통, 근육통 등 다양한 부위의 설명하기 어려운 통증, 소화불량 등


    - 일과 관련하여 전반적으로 뒤처지고 고립된 느낌


    일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 및 좌절감, 업무 환경 및 동료들에 대한 냉소적 태도,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멍하고 둔감해진 느낌,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도 회피하거나 거리를 두게 됨


    - 업무 생산성의 저하


    업무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생각, 집중력의 저하, 창의성의 고갈


    오랜 기간 고된 업무 아래 심리적, 육체적으로 방치하면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몸과 마음에 나타나는 문제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장기간 스트레스는 심리적으로는 우울증, 공황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불안 및 스트레스성 질환과 관련될 수 있으며, 신체적으로도 당뇨,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 및 면역력 저하와 관련된 여러 질환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한편, 개개인의 업무 효율의 저하 및 업무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인해 조직 전반의 사기와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똑같은 스트레스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소진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가령, 매사에 지나치게 완벽하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일에만 너무 매달리거나 과도하게 회사에 헌신하며, 가정이나 친구 등 일 이외 삶의 다른 영역의 의미를 등한시 여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소진되기 쉽다.


    반면,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능력, 삶에 대한 깊은 소명의식과 가치관,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공감능력 등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격적인 강점과 내적인 힘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쉽게 소진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심리적 방어장치가 되기도 한다.


    소진 증후군에 대해 전문가들에 따라 제시하는 해결방안은 다양하다. 정서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가족, 직장동료 등과 대화하는 것, 정해진 업무 시간 내에서만 일하고, 퇴근 이후에 집으로 일을 가져오지 않는 것, 짧은 여행이나 운동, 그 밖의 취미생활 등을 통해 적절하게 쉬는 것 등이 소진 증후군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잠시 멈추고 돌아봐야 할 시점임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성과에 대한 끊임없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잠시 멈추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에너지로 스스로를 끝까지 불태우며 재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상태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방전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때때로 마음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몸에 대한 정기검진이 필요하듯 마음에 대해서도 검진이 필요하며,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때로 전문가와의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진 증후군과 관련된 나의 성격적 요인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나의 강점 및 내적인 힘을 재발견하고 강화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일이 나에게 가지는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돌아보고 멈출 수 있는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 기업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소진 증후군은 결코 해결되기 어렵다. 그러기에 잠시 멈추어야 할 시점인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기꺼이 허용 가능한 사회적 차원의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