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30 11:10
- ▲ 유승용 리더피아 대표
"요즘 청년들은 사명감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내가 왜 대학에 갔고, 졸업 후 취업이든 창업이든 왜 그 일을 할 것인지, 어떤 보상과 조건, 환경을 떠나 사명감만 있으면 자신의 일을 즐겁고 보람 있게 할 수 있을 텐데요."
"사명감요? 에이, 그렇지 않아요. 요즘 학생들이 어떤 아이들인데요."
"네?"
"요즘 아이들 사명감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자신이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해요. 사명감 보다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행동할 뿐이에요."
"그러니까 대학에서 잘 가르쳐야죠. 인생에서 사명감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요."
"음, 뭐 그렇긴 한데, 예전 같지 않아요. 학생들이, 교수가 잘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스승의 역할이 중요하죠. 그런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게 교수의 역할 아닌가요?"
"에이, 교육 현실을 너무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얼마 전 한 대학교수와 식사자리에서 약간의 설전이 있었다. 주위의 만류로 얘기가 더 진전되진 않았지만 그와의 대화 끝은 참 씁쓸했다. 지면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의견 충돌이 많았다. 그는 나를 교육 현실을 잘 모르는 매우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겼고, 나는 그를 교육자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서로가 오랫동안 업계의 발전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함께 풀어나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기에 생각과 인식의 차이는 인정하기로 내심 마음을 먹고 헤어졌다.
사명감. 사전적 의미는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사전적 의미를 유심히 살펴보니, 여기서 '주어진 임무'가 좀 거슬리게 인식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타인이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교수와 나는 사명감에 대한 의미를 달리 해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당연히 누구든 타인에 의해 명령 받고 지시 받으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세상 누구든 타인에게 구속 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사명감에서 내가 보는 이 '주어진 임무'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공(public)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어디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하든, 이러한 사회적 가치는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왜 이 회사를 창업했는가,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 즉, 본원적 질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회적 가치나 공공의 가치, 즉 많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일과 직업에 대해(설사 그 일과 직업이 사회적으로 촉망 받고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닐지라도) 진정으로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월급이 없습니다! 그래도 입사하고 싶습니까?"
"저는 월급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단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써보고 싶고, 그 기사가 우리 사회에 작지만 올바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20년 전 신입기자 면접을 갔을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면접관이 말도 안 되는 질문(아마 지금 이런 면접관이 있다면 꼰대로 치부 당하고 그 회사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을 한 것이고, 나의 대답도 참으로 진부했었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기자가 되어서 올바른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한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것이 나의 변치 않는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런 사명감이 없다면 치열한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며칠 후면 특강 차 모 대학의 학생들을 만나러 간다. 그들과도 사명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즐거운 삶을 그리고 있는 그들, '사명감'이 그들의 미래를 행복하게 이끌어 줄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