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까먹는 대출이자... 보험마저 깬다

    입력 : 2017.03.30 09:44

    [점점 가난해지는 가계… 작년 이자수지 첫 적자]


    작년 실질소득 0.4% 감소… 가구당 평균 7000만원 빚
    급전 위해 보험 깨는 경우 늘어
    정부는 세금 24兆나 더 걷어


    서울 강북에 사는 직장인 김모(42)씨는 올해 초등학교 신입생인 딸을 위해 책상과 침대를 마련해 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책상은 같은 아파트 주민이 '필요하신 분 가져다 쓰세요'라는 문구를 붙여 밖에다 내놓은 걸 가져왔다. 침대는 새것이 아닌 중고(中古)로 사줬다. 자전거도 "타던 걸 물려주겠다"는 사람이 안 나서면, 중고 자전거를 사줄 생각이다.


    김씨가 출근할 때 입는 양복은 유행이 한참 지난 것들이다. 구두는 변두리 백화점에서 '떨이 세일'할 때 3만9000원 주고 사 신었다. 하지만 여전히 돈에 쪼들린다. 여름이 되면 또 올려줘야 할 전세금과 딸 학원비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연봉은 제자리걸음인데 교육비·주거비는 갈수록 더 들어가 빚만 쌓인다"며 "요즘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있지만 자꾸 가난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가난해지는 가계'… 소득은 줄고, 빚은 늘고


    김씨 얘기대로 가계(家計)는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빚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16년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작년 가계 월평균 소득은 439만9200원으로 2015년보다 0.6% 상승했다. 하지만 이는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은 명목소득이다.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0.4% 감소했다. 가계의 경제적 능력이 뒷걸음질친 것이다.


    반면 작년 가계부채는 1344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구당 7000만원꼴이다. 연간 증가액(141조2000억원)도 사상 최대였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국민계정' 자료를 보면, 작년 가계의 이자수입에서 이자지출을 뺀 이자수지는 5조6589억원 적자(赤字)를 기록했다. 이자수지 적자는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5년 이후 최초다.


    ◇허리띠 졸라매도 '여윳돈' 줄어들어


    소득은 줄고 빚은 늘어나자 가계들은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작년 가구당 월평균 소비는 255만원으로 2015년보다 0.5% 감소했다. 소비 축소는 식료품·음료(1.3%), 의류·신발(2.4%) 등 일상적 지출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다른 것은 다 줄여도 이것만은 아끼지 않겠다"고 흔히 말하는 교육비 지출도 0.4% 감소했다. '최후의 안전판'으로 불리는 보험에 가입하는 비율도 하락했다.


    작년 전체 가구의 보험 가입률은 81.8%로 2015년보다 5.4%포인트 줄었다. 작년 3분기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한 고객에게 내준 환급금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의 19%가 넘었다. 이는 2012년 1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급전이 필요해 보험마저 깨는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생활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은의 '2016년 자금순환' 분석에 따르면, 가계의 연간 금융자산 증가액에서 금융부채 증가액을 뺀 '순자금 운용'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2015년 94조2000억원이었던 이 액수는 작년 70조5000억원으로 25%(23조7000억원) 급락했다.


    ◇정부 '나홀로 호황'… 세금 많이 걷은 탓


    경제 3대 주체 중에 '벌이'가 좋아진 건 정부뿐이다. 작년 전체 처분가능소득 중에 정부 몫은 23.1%로 2015년보다 1.1%포인트 커졌다. 반면 가계, 기업 몫은 각각 0.3%포인트, 0.8%포인트씩 줄었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은 탓"이라고 말했다. 작년 국세(國稅) 수입은 242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4조7000억원 늘어났다. 국민 1인당 48만원쯤 세금을 더 거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