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중국 화웨이 딜레마'

    입력 : 2017.03.27 09:27

    [미국 "화웨이 장비, 美안보도 위협"… 통신업계 곤혹]


    기지국에 성능 좋고 값은 절반인 화웨이 장비 도입할 방침인데…
    '사드 보복' 中 업체라서 걸리고, 미국도 "보안 새나갈 것" 우려


    - 트럼프 집권 후 더 강경해진 미국
    "화웨이, 중국 군사당국과 긴밀… 주한미군 시설 도감청 등 우려"
    호주도 화웨이 장비 일절 안써


    - 안보 vs 경제성… SKT의 고민
    "화웨이, 노키아·에릭슨급 기술… '1+1' 넘는 파격조건 제시한 듯"


    SK텔레콤이 중국 1위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華爲)의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 도입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SK텔레콤은 올해 상반기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 LTE(4세대 이동통신) 기지국 설비를 증설하기로 하고 작년 말 화웨이로부터 장비 도입 제안을 받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현재 4개월 넘게 장비 테스트만 하고 있다. 통신장비는 수출·수입이 제한되는 전략물자인 데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으로 양국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 국내 1위 이동통신 회사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는 게 적절한가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26일 통신장비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작년 연말쯤 제주도 기지국 증설을 위해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이 계속되면서 최종 도입 여부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텔레콤에 정통한 한 장비 업체 관계자는 "상반기 안으로 기지국 증설을 완료하려면 지금쯤 도입 여부에 대한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면서 "중국 화웨이 측도 난감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에서 한국 통신 업체들의 화웨이 장비 도입을 우려에 찬 시선으로 보는 것도 큰 부담이다. 실제로 작년 연말 미국 하원과 상원의 일부 의원이 한국 통신 기업들이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사실이 최근 알려지기도 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최근 국내 통신업계의 외산(外産) 장비 도입 현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부 관계자는 "SK텔레콤의 화웨이 장비 도입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미국·중국 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시 불거지는 화웨이 장비 도입 논란


    SK텔레콤의 화웨이 장비 도입이 논란이 되는 것은 도감청 등 정보 보안 우려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화웨이가 국내 통신기업의 네트워크 장비를 장악할 경우 마음만 먹으면 통화 내역을 모니터링하거나 특정인의 통화 내용을 통째로 듣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 측에서도 주한미군에 대한 보안상의 이유를 들며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다. 한 대형 통신 장비 업체 임원은 "휴대폰이 연결되었을 때 기지국 서버에 데이터가 남기 때문에 관련 프로그램에 간단한 명령어를 숨겨 놓으면 쉽게 정보를 빼갈 수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 통신 장비 도입에 대한 논란은 2013년 말 LG유플러스가 서울과 강원·경기 일부 지역에 화웨이의 LTE 기지국 장비를 도입했을 때에도 불거졌다. 당시 미국 당국은 "화웨이가 중국 군사 당국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다. 설치를 자제해달라"며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 통신업계에서도 "삼성전자도 중국에 반도체를 수출하지 않느냐"는 의견과 "보안 우려가 있는 화웨이 제품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굳이 써야하느냐"는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이 때문에 LG유플러스는 지금도 서울 용산 등 미군 부대 인근에는 화웨이 장비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미래부가 LG유플러스로부터 보안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받고 암묵적으로 이를 승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웨이는 그동안 "전 세계 주요 통신사에서 신뢰성이 검증된 통신 장비에 대한 억측"이라며 보안에 대한 우려를 일축해 왔다.


    ◇트럼프 등장 이후 더 강경해진 미국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한국 통신업체의 화웨이 장비 도입에 대해 더욱 강경해진 분위기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 직후인 작년 12월에는 스티브 차봇 미국 하원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 등 3명의 국회의원이 미국 국방부로 "화웨이가 한국에서 이동통신망 구축에 참여하는 것을 미국 안보를 위해 막아야 한다"는 요지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이 준비하는 5G 네트워크는 전자장치와 가전(家電) 등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미군이나 미국 정보시설, 외교시설 장비에 있는 데이터가 화웨이의 네트워크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 의회 정보위원회는 2012년 "화웨이가 중국 군사 당국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비공개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밖에도 미국은 대(對) 이란·북한 경제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중국 2위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ZTE(中興)에 11억9200만달러(약 1조40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제재 위반과 관련해 외국 기업에 부과한 벌금 중 역대 최고액이다. ZTE는 당시 북한에 283차례에 걸쳐 휴대전화와 관련 장비를 수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냐, 글로벌 스탠더드냐


    화웨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기술력과 저가(低價) 전략을 앞세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내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유선네트워크 부분에선 공식 후원사로 선정됐다. 한 통신업체 임원은 "노키아나 에릭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에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 통신업계에서 화웨이 장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본토는 물론이고 미국과 동맹 관계인 호주에서도 화웨이 장비를 일절 도입하지 않고 있다. 화웨이 장비를 일부 도입한 영국에서도 영국 의회가 지속적으로 보안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고민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보안 우려를 생각하면 도입 결정을 내리기 어렵지만, 값싼 장비에 대한 유혹도 뿌리치기 어렵다. 게다가 SK의 경우, SK하이닉스 반도체의 가장 큰 고객이 중국 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 통신 장비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1+1'을 넘어서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최지우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 본부장은 "보안과 밀접하게 관련된 통신 장비 분야에서 점점 외국 기술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