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봄날, 내수는 한겨울... 불안한 엇박자

    입력 : 2017.03.22 09:28

    반도체·디스플레이 호황으로 삼성전자 등 첨단기업 실적 껑충
    가전제품·승용차·가구 등 내구재 판매는 계속 지지부진


    보호무역주의 강화 추세에 수출 상승세 언제 꺾일지 몰라
    내수 불황 깊어지면 경기 위축


    최근 증권사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상향 조정했다. 이들 기업의 수출이 최근 급증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증권사들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을 8조원대로 예상했다. 하지만 메리츠종금증권이 20일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등 대부분 9조원대 후반을 예상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데다, 환율 효과도 이어지면서 수출이 늘었기 때문"이라며 "당분간 반도체 수급이 개선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수출 호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구공장 400여곳이 입주해 있는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가구공단엔 셔터를 내린 공장이 많다.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일반 가정들이 목돈이 들어가는 가구 구매를 꺼린다. 자영업자들도 내부 인테리어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사무·업소용 가구 매출도 큰 폭으로 줄었다. 가구업체 관계자는 "작년 여름까지 상승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이 작년 '11·3 대책' 이후 위축되면서 가구 시장이 더욱 얼어붙었다"며 "중소 가구업체들은 작년 말부터 매출이 3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수출 기업은 최대 실적 기대


    국내 산업계의 수출과 내수 시장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수출은 작년 11월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내수 시장은 오히려 하락세로 돌아섰다. 최근 보호무역주의 강화 추세로 수출 상승세가 언제 꺾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계 부채와 고령화로 '내수 불황'이 깊어질 경우, 국내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출을 위주로 하는 첨단기업들은 올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호황 덕분이다. D램 반도체 시장 세계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 역시 1분기 영업이익이 2조원대 중반을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고급 사양 경쟁을 펼치면서 모바일 부문 D램 수출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LG디스플레이도 패널 가격이 강세를 보이면서 1분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 예상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올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104.3%나 늘어난 8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석유화학과 석유제품, 철강 등의 2월 수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40%를 웃도는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들 제품은 경쟁국인 중국이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제품 생산량을 줄이면서, 국제 제품 가격이 오른 탓이 크다.


    ◇지지부진한 내수 시장


    온기를 되찾은 수출과 달리 내수 시장엔 한파가 불고 있다. 가전제품과 승용차, 가구 등 내구재(耐久財)의 내수 판매가 지지부진하다. 2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가전제품의 내수 판매액은 약 1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2% 감소했다. 통신기기와 컴퓨터 판매액은 1조7000억원으로 제자리걸음 했다. 문제는 구조적으로 이런 내수 부진을 탈출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계 부채가 역대 최고치인 1300조원에 이르 는데다, 고령화로 인해 소비층이 갈수록 얇아지기 때문이다.


    내수 부진으로 한국이 세계의 경제 회복 흐름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4분기 국내 경제성장률은 수출 회복에도 내수 부진에 발목이 잡혀 0.4% 성장에 그쳤다. 이는 3분기 경제성장률 0.6%보다 낮은 수치였다. 이런 성장률 하락세는 다른 국가의 경제 회복세와 비교된다. 대표적 경기 선행지표인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의 경우, 한국은 작년 초 50을 간신히 넘었다가 올해 들어서는 49로 오히려 후퇴했다. PMI는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50 이하면 경기 축소를 의미한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PMI는 작년 초 바닥을 찍고 상승하면서 올 들어 55~56 안팎을 기록 중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수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통상 마찰과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로 수출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내수 침체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세계 경제는 살아나는데 한국만 저성장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