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16 13:13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도 환자에게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의사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병원에도 기업에서나 쓰일법한 마케팅 기법은 물론 각종 경영기법이 도입됐다. 바야흐로 의사도 서비스 업종의 리더 중 한 명으로 간주되는 시대다. 환자를 위한 다양한 진료를 펼치는 의료계에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이동희 교수와 함께 송파구와 강동구를 아우르는 서울 동남권 안과전문병원으로 도약하고 있는 삼성안과를 찾았다.
- ▲ 김병진 삼성안과 대표원장
"새롭게 도전할 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의료라는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때마다 돈을 따르기보다 내 영혼이 행복한 일을 하자는 게 결론이었다."
김병진 삼성안과 대표원장의 의사로서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학부시절 정신과에 관심이 많았지만 환자를 완치시키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아쉬움을 견딜 수 없었다. 의사라면 환자를 완치시키는 데서 보람을 느껴야 한다는 주관이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안과를 선택했다. 마침 군의관을 마치고 사회로 나온 1999년은 라식 수술 바람이 불어 강남 안과들은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액연봉을 제안했지만 다 뿌리치고 대학으로 갔다. 아직도 완벽히 배우지 못한 영역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박봉을 받으며 7년간 교수생활을 하는 동안 노력해 학계에서 촉망 받는 젊은 안과의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번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주변의 반대를 무릎 쓰고 개인병원을 개원했다. 그리고 10년. 이제는 지역주민들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안과전문병원으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고 있다.
김병진 원장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면 모두가 삶의 주인공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행복과 성공은 이미 하늘이 우리의 통장에 넣어준 것이므로 주위에 할 수 있는 것부터 한가지씩 즐거운 마음으로 실천해 이를 찾아 쓰는 사람만이 행복과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나 같은 보통 사람도 창의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모방과 창의를 적절히 반복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실천한다면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고, 지난 달보다 이번 달이 나아지며 지난 해보다 올해가 나아지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희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와 김병진 삼성안과 대표원장의 대담은 송파구에 위치한 삼성안과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이 교수와 김 원장의 일문일답.
이동희 국민대 교수(이하 이동희): 안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김병진 삼성안과 대표원장(이하 김병진): 사실 안과는 3지망이었다. 처음에 실습을 돌 때는 정신과에 관심이 많았다. 정신과의 경우 의학의 인문학이라고 느낄 정도로 깊이가 있다고 느껴서 대단히 재미있게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실습 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실습을 마칠 때쯤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진료를 통해 완치되는 환자가 없었고 끊임없이 치료해야 하는 점 때문이었다. 인턴시절 내과도 경험했는데 정말이지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더라. 결국 내과적 질환 치유와 꼼꼼한 수술이 합쳐져 있는 안과를 선택하게 됐다. 'Medical'과 'Surgical'의 절묘한 경계선이 안과라고 생각했다.
이동희: 안과를 선택한 이후 삼성병원에서 일한 것으로 안다
김병진: 삼척의료원에서 2년간 과장으로 일했다. 당시 외래환자를 매일 80~100명보고 한 달에 20명 정도 수술을 했다. 당시 경험상 지방에서 실제로 필요한 분야는 백내장이나 눈물길을 틔워주는 등의 안성형 파트였다. 하지만 대학마다 교수가 모두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나 역시 전공의 때 이를 완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의사로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었다. 마침 국내 최고 권위자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를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 삼성병원으로 가게 됐다.
이동희: 당시 라식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개인병원 의사들과 급여 차이가 컷을 텐데?
김병진: 군에서 전역한 1999년 라식 붐이 일었다. 전문의를 따고 수술경험도 충분해서 그랬는지 강남에 있는 몇몇 안과에서 월 3천만 원의 급여를 제안 받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내가 결정한 삼성병원은 게다가 아침 6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고, 급여도 1/10 정도에 불과했다. 의사인 집사람도 반대했었지만 그 길을 선택했다. 힘든 길이라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설득했다.
이동희: 굳이 불편한 길로 들어선 이유가 있나?
김병진: 거창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며 맹세한 의료인으로서의 제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모두가 편한 길만 가려 하면 누가 불편하고 아픈 눈을 보살피겠나? 좀 멀고 힘들어서 남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아도, 토탈 케어가 가능한 안과의 길로 가기로 했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그 동안 안과 질환, 백내장, 라식/라섹, 안성형, 눈물길, 드림렌즈 등의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한 시간들이 버려지는 게 싫었다.
이동희: 당시 안과의 경우 교수가 되는 것보다 개원 의가 되는 게 대세 아니었나?
김병진: 그렇다. 당시에는 대학보다 시장이 워낙 좋았다. 또, 주니어의 경우 교수사회라는 게 엄처시하에서 궂은 일도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돈을 포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단계별 목표를 세워 열심히 실천했다. 연구로 인정받는 교수가 되고자 노력했다. 노력을 계속하니 학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게 되더라. 나중에는 분과학회에서 기획이사까지 할 수 있었다.
이동희: 내가 원하는 일을 하니 열정은 기본이었을 것 같다. 계획은 어떻게 세웠나?
김병진: 우선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SCI 몇 개 쓰자. 외국 연수를 가자 등등 이었다. 매년 평균 3편의 논문을 썼고, 학회에서의 발표도 밤새 열심히 준비했다. 한번 발표에 논문 100개 정도를 리뷰해서 쓰는 경우도 많았다. 열심히 하니 끌어주는 분들도 생기면서 한림대학교 의과대학과 컬럼비아 의과대학과 제휴를 맺었을 때 재단 1번으로 연수를 떠나기도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7년 만에 계획했던 모든 것을 완료했다.
40세에 결행한 두 번째 도전
이동희: 교수로서 일군 것들을 모두 버리고 개원의가 되는 게 쉽지는 않지 않나?
김병진: 목표한 바를 이루고 나니 우리 나이로 40살이었다. 보통 40세가 되면 남은 인생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지 않나. 당시에 생각해보니 이제는 그냥 편안하게 살 수 있겠더라. 교수 사회에서 나와 개원 의를 차릴 경우 그 동안의 연구성과 등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좀 더 열심히 살고 싶었다.
이동희: 2006년 개원의가 됐는데 당시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김병진: "교수하던 사람이 뭘 안다고 나가려 하느냐"는 이야기 많이 들었다. 교수나 공직자가 사업해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충고도 많았다. 30대에 열심히 살았으니 40대에도 가능할 것이라고, 그렇게 겁 없이 시작한 것 같다. 6개월 정도 병원자리를 알아보고 지금의 자리로 결정했다.
이동희: 왜 강남에서 개원하지 않았나?
김병진: 그때까지도 라식 수술 경쟁이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재의 위치와 강남의 부동산 비용에서는 그리 큰 차이도 없었다. 시력 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안과를 차려 편하게 수익을 올리고 싶다는 유혹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지금까지 진료해온 질병환자들을 다 버리고 라식수술만 하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실제로 안과의사들 사이에서는 라식 환자만 보는 의사들을 부정적 의미로 'carpenter'라고 부른다. 기계로 각막을 깎는 일만 한다는 의미의 비아냥이다. 사실 좋은 목수라면 대패로 나무를 깎아내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동희: 병원 경영이 어려운 적은 없었나?
김병진: 개원 후 6개월 정도, 병원이 자리잡을 때까지는 경제적인 압박도 있었지만 내 스스로 업에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많이 한 시기였다. 생각해보니 환자를 대할 때 개원의가 아니라 교수처럼 딱딱하게 대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래서야 고객만족 서비스가 되겠나. 이때 한 강의를 통해 고객만족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됐다.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보다 정성 어린 진료가 가능해지면서 서서히 경영의 안정을 찾게 됐다.
이동희: 교수자리를 박차고 나와 개원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김병진: '내가 슈바이처도 아닌데 이 고생을 왜 사서 하나' 등의 생각이 왜 없었겠나? 처음에 개원한 후 3년간은 간혹 '강남에서 편하게 시력교정 안과의를 할 걸 그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서 개인의 정체성이 좀 더 단단하게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이동희: 어떻게 결론 내렸나?
김병진: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내 영혼이 인도하는 길을 가자'고 생각했다. 애초에 환자들을 완치시키고 싶어 정신과 대신 안과를 선택했고, 돈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택해 교수가 됐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 개원의가 됐다. 환자들이 완치 된 후 환하게 웃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마음 속 근심까지도 모두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각자가 원하는 방향도 있다. 기왕이면 여러 사람이 행복한, 그러면서 내 영혼이 행복한 길을 가자고 결론지었다.
10년 후 나는 행복할까?
이동희: 병원도 대형화 트렌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김병진: 작년에 강남의 대형 성형외과 3개 중 2개가 문을 닫았다. 대량 박리다매로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병원은 돈이 되는 특정분야에 집중한 공장형 대형화보다는 전문화된 영역을 다양화 하는, 질적인 대형화를 지향해야 한다. 프랜차이즈기법을 차용해 규모를 확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같은 간판을 단 병원이 많아지면 결국 의료 서비스의 품질이 동일한가, 즉 품질관리에 문제가 생긴다.
이동희: 유령의사라고 하나? 일부 강남 개원의의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도 들린다
김병진: 대형화에 따른 그림자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비윤리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고객을 유치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 하에서 윤리의식이 조금씩 무뎌지다 보니 결국 경계가 없어진 것 같다. 안과로 본다면 눈의 앞부분이냐 눈의 뒷부분이냐에 따라 전문영역이 있다. 진료의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는 질적인 확대를 통한 대형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동희: 진료 시 최우선으로 삼는 가치는?
김병진: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고객들의 눈을 건강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 예로 백내장이라 하더라도 진행상태에 따라 모두 수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수술이 필요치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내장이라며 수술을 권하는 병원이 적지 않다. 만약 내 부모라고 생각한다면 수술을 권유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진심을 담아 안전, 신뢰, 정직한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을 지키는 것이 기본이다.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우수한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동희: 내 진심을 전달하는 것, 소통이 쉽지는 않다
김병진: 경험이 없을 때는 환자가 몰리면 급했다. 다음 환자를 빨리 봐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한 기색이 얼굴에 나타났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점에 갔을 때를 생각해보자. 좀 기다려도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순간 기다림에서 비롯된 짜증은 없어진다.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정성을 다한 진료를 받으면 조금 기다리더라도 이해한다. 아무리 작은 증상이라도 정성 들여 진료하면 환자가 먼저 고마움을 표시한다. 실제로 서둘러도 진료시간에 큰 차이는 없다. 물론 너무 많을 경우에는 직원들이 친절히 상담을 돕기도 한다. 직원 교육을 강화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직원들을 통해 만족스러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희: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병원 운영철학이 있다면?
김병진: 스스로 찾아와 비용을 지불한 고객이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한다. 이런 서비스 업종이 있을까? 병원이 그렇다. 정성을 다해야 한다. 우선 '왜(Why) 일하는가'를 강조한다. 환자들에게 밝음과 행복을 주기 위해 일해야 한다. 의료 서비스의 존재 이유인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봉사와 인술을 실천하려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두 번째는 '어떻게(how)'다. 첨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세 번째가 '무엇을(What)'이다. 항상 고객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고객이 만족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동희: 올해로 개원 12주년이다
김병진: 2015년 10주년이 됐을 때 또 다른 10년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송파, 강동 등 서울 동남권 지역민들에게만큼은 믿을 수 있는 병원이 되려 한다. 단순히 실력뿐만 아니라 규모에 의한 신뢰도가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의사 수와 규모 면에서 더 확장하려 한다.
이동희: 돈보다는 원하는 것을 찾아 교수가 됐고 그 후 다시 도전해 개원의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미래를 위한 3번째 도전인 셈인데
김병진: 사실 뒤돌아보니 30대에는 교만했다. 인생을 배우면서 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매번 도전에 앞설 때마다 '이렇게 도전하면 10년 뒤에 나는 행복할까?' 하고 자문한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6개월 정도 생각해봤다. 의료진을 더 확충해 안과전문병원으로 발전시켜 지역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진료를 제공하고 싶다.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는 부부관계
이동희: 직원에게 어떤 리더라고 자평하나?
김병진: 일반적으로 '직원은 가족이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시스템이 부실하니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었다. 리더는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팔로워들을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함께 가기 위해서는 한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리더와 직원의 관계는 부부관계'라고 생각한다. 같은 지향점을 향해 가되 서로 쳐다보기도 하면서 가야 함께 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독서토론 등 각종 교육을 한다.
이동희: 직원 교육은?
김병진: 지난 해부터 독서토론을 시작했다. 병원 식구들이 모두 20명 정도 되는데 처음에는 실장급만 모아서 점심시간에 샌드위치 먹으면서 간단히 진행했다. 6개월이 지나니 주니어급 직원들도 원했다. 그 다음부터는 상담 코디, 간호, 검안 등 3가지 파트별로 돌아가면서 진행한다. 이밖에 1달에 1번 직무교육, 1년에 2번 CS교육을 한다. 가을에는 야유회를 간다.
이동희: 직원들을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닌가?(웃음)
김병진: 직원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 안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가려면 다리 힘도 있어야 하고 차비도 있어야 한다. 특히 직원들이 스스로 내공을 쌓을 필요가 있다. 전투력이 부족하면 대인관계 중 쉽게 지치거나 상처받는다.
이동희: 요즘 관심 있게 읽고 있는 책은?
김병진: 예전에 읽었지만 이번에 직원들과 함께 읽을 책이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왜 일하는가≫이다.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때로는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괜히 헛고생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과연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 회의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잊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을 경주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어려운 목표도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사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이며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을 이용하고 넘어서려는 창조적 의지다.
<김병진 대표원장의 인생 방정식>
"인생과 일은 능력과 열의, 사고방식을 곱한 것과 정비례한다."
김병진 원장은 올바른 사고방식과 강한 열의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살려 세상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능력은 선천적인 지능과 운동신경 또는 건강 등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고 열의는 후천적인 노력을 뜻한다. 고생을 탓하지 않고,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믿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사고방식이 긍정적인 (+)의 사고방식이다. 이 세가지를 곱한 것이 인생과 일을 결정한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특히 앞선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더라도 세상을 삐뚤게 보고, 남을 시기하며 열심히 살기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은 빼기(-)적 사고방식이므로 결국 인생과 일 모두에 성공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이 방정식을 염두에 두고 실천한다면 인생에 풍요로운 열매가 열리고, 놀라운 세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기자'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자' 등은 그가 자주 생각하는 다짐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명제도 김 원장이 소중히 여기는 문구다. 그는 건강하고 활기차게 안과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일주일에 3번 30분 이상 걷기 운동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
김 원장은 "최근 국민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는 자전거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최상의 운동"이라며 건강 관리를 위한 방법론으로 자전거 타기 예찬론을 펼쳤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