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소비자의 날'... 한국 못가게 손발 묶은 날

    입력 : 2017.03.16 09:13

    [제주 유커, 8년전 수준으로 줄어… 롯데, 쇼핑백서 로고 삭제]


    中, 한국 단체관광 금지한 첫날… 제주 中관광객 2주새 62% 급감
    정부, 피해 기업에 4000억 지원


    - 관련 업계 "메르스 때보다 심각"
    명동 호텔 "유커 예약 30% 취소"
    인근 상인 "매출 70% 떨어질 것"
    부산 크루즈 보름새 29척 취소, 대한항공·아시아나 中노선 축소
    "진짜 관광절벽, 내주 본격 시작"


    중국 정부가 한국행 단체 관광에 대해 금지령을 내린 첫날인 15일 오후 1시 40분 제주공항. 선전(深圳)을 출발해 도착한 170석 규모의 중국 국적 항공기에는 32명만 타고 있었다. 다섯 자리 중 네 자리가 빈 꼴이다. 이날 중국을 떠나 제주공항에 도착한 여객기는 총 12편, 탑승객은 974명이었다. 중국에서 제주공항으로 들어온 입국자가 하루 1000명 미만으로 떨어진 건 2009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2주일 전인 지난 1일 중국발 여객기와 입국자에 비해 각각 40%와 62%씩 줄었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중국을 오가는 정기 노선 항공기는 대부분 좌석이 절반 이상 비어 있고, 봄철 관광 시즌에 맞춰 증편하려던 비정기 노선은 아예 운항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제주시 연동의 '바오젠(寶健) 거리'. 이 거리는 중국 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찾아 2011년 공식 거리 이름을 중국식으로 바꾼 곳이다. 이곳에 있는 200석 규모의 한 식당은 점심 시간대인데도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주인 김모(48)씨는 "지난주부터 빈자리가 늘더니 이번 주부터 손님이 아예 끊겼다"며 "직원 인건비와 가게 임차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제주 한 여행사 관계자는 "이달 들어 13일까지 총 11만7823명의 관광객이 예약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유커 넘쳤던 제주 거리 - 15일 오전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가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금지 조치로 텅 비었다. 2011년 중국 건강용품업체 바오젠그룹 직원 1만1000명이 방문한 것을 기념해 명명된 이 거리는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으며 '제주 속의 작은 중국'으로 불렸다. /김형호 객원기자

    인천공항 '썰렁' - 1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는 중국인 관광객도, 이들을 맞는 관광 가이드의 피켓도 보이지 않았다. /김지호 기자


    15일 전국 관광지에는 '차이나 쇼크'가 닥쳤다. 연간 300만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던 제주도는 위기감에 휩싸였고, 서울 명동에선 '깃발 부대', 부산항에는 '크루즈 관광객'들이 자취를 감췄다. 중국 국가여유국(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조치로 중국 내 여행사들에 '한국 관광 상품을 3월 15일부터 팔지 말 것'을 지시한 후폭풍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한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이달 11일까지 매일 90명씩 오던 중국인 관광객이 12일부터 제로(0)"라고 말했다. 중국의 보복 조치가 예상을 뛰어넘자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5일 오후 '한·중 통상민관협의회'를 열고 중국 보복 조치와 관련해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 4000억원의 자금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의 주차 빌딩 3층. 버스 25대가 동시 주차 가능한 이곳엔 5대밖에 없었다. 평소 수백 대가 오가면서 늘 만차였던 곳이다. 관광버스 200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인근 사설 주차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면세점으로 올라가니 1~2명씩 다니는 개인 관광객들 손에는 아무런 로고가 없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롯데' 로고를 들고 중국에 들어가기 부담스러워하는 고객이 많아 지난주 금요일부터 원하는 사람에게 로고 없는 쇼핑백을 나눠주고 있다"며 "단체 관광객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50% 정도가 되는데, 이들이 거의 다 빠졌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인근의 신세계면세점에서는 취재 기자와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면세점을 촬영하던 기자들을 보고 중국인 관광객이 "카메라를 치워라"며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난달만 해도 하루 매출이 38억원에 달했으나 지난 주말부터 하루에 7억원씩 줄어들고 있다"며 "중국인 방문객들도 언론 보도가 나가는 것에 매우 민감해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롯데에 대한 사드 보복 조치 이후 신세계면세점은 반사 이익을 보는 듯했으나 이마저도 이날부터는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시장의 규모는 12조2700억원, 이 중 중국인 비중이 8조6000억원에 달한다.


    서울 중구 회현역 근처에 있는 명동의 한 호텔 로비. 오전마다 빨간 깃발을 들고 인원 체크를 하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했지만 이날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인근 호텔 관계자는 "이달 들어 전체 중국인 관광객 예약이 매일 30%씩 취소됐다"며 "인근에는 오늘부터 예약이 한 건도 없는 비즈니스호텔도 있다"고 말했다.


    여행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규모인 A여행사는 15일 중국인 관광객이 2팀, B 여행사는 1팀 들어왔다. A여행사 관계자는 "내일(16일)부터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관광팀이 한 팀도 없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에서는 제주도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90% 정도를 담당하는 중국 여행사 두 곳이 폐업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무급 휴가라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보따리상으로 가득했던 인천항도 텅 비었다. 인천항 관계자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 특수를 누리던 명동 상인들은 고사 직전이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100㎡(약 30평) 규모의 화장품 매장 '홀리카 홀리카'는 한 시간이 지나도 매장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한 명도 없었다. 매장 주인 강창구(51)씨는 "한창 중국인 관광객이 몰릴 때는 월 매출이 5억~7억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억원 정도로 떨어져 상가 임차료만 간신히 낼 지경"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20m 이상 줄을 섰던 환전소도 손님이 한두 명에 그칠 정도로 한산했다. 상인들 사이에선 '명동 상권이 고사(枯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다. 화장품 매장 '로얄스킨'을 운영하는 김철호(43)씨는 "이번 조치로 매출이 70% 정도 줄어들 것"이라며 "'어떻게 버틸까'가 아니라 '언제 관둬야 손해를 덜 볼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점에서 어묵과 떡갈비를 파는 김모(40)씨는 "이번 조치로 많은 노점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항만공사는 이달 들어 14일까지 부산 기항 취소를 통보한 크루즈선은 29척이라고 밝혔다. 부산의 '명동'으로 불렸던 광복로는 중국인 관광객이 줄자 중국어로 된 광고 문구를 전부 내렸다. 한 상인은 "앞으로 내국인에게 주력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항공사들은 관광 수요 위축에 따라 중국 노선 운항을 일시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훈 한양대(관광학) 교수는 "15일부터 중국에서 한국행 단체 여행 상품 판매가 중단됐기 때문에 진짜 '관광 절벽'은 다음 주부터 본격화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관광 상품 할인 등으로 긴급 모색에 나서고, 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관광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