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 1년 만에 '찬밥'... 상품 절반이 수익률 1%도 안돼

    입력 : 2017.03.02 09:46

    [만능 통장이라던 ISA, 인기 시들]


    - 가입 조건 까다롭고
    의무 가입 5년 채워야 순소득 200만원까지 비과세
    소득 증빙 어려운 은퇴자는 여윳돈 있어도 가입 어려워


    - 수익률은 저조
    마이너스 상품도 17%나 돼… 금융사만 0.89% 수수료 챙겨


    "ISA 상품 판매요? 지금 같은 조건으로는 고객들은커녕 친척들에게 가입하라고 권하기도 민망합니다. 제한 조건이 너무 많아서 재테크 상품에 걸맞지 않다는 인식이 커졌어요."


    국내 대형 증권사의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키워드) 상품 담당 팀장은 전화기 너머에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해 수익률이 낮아 고객들 반응이 시큰둥한데, 금융 당국은 상품 가입 부적격자까지 걸러내라고 하면서 제도도 개선하라고 하니 업무량만 늘었다"는 것이다. ISA에 가입한 고객들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작년 말 ISA 계좌를 해지한 직장인 조모(35)씨는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수익금 200만원에 대해 세제 혜택을 받으려고 5년이나 계좌를 유지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ISA가 오는 14일 출시 1년을 맞는다. 작년 3월 '온국민 부자 만들기 프로젝트' 일환이라는 금융 당국 선전 속에서 등장했을 때는 은행·증권사 등에서 가입자 유치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흔적이 온데간데 없다. 저조한 수익률과 까다로운 가입 조건 등으로 고객들 반응이 시원찮기 때문이다.


    ◇떠나는 가입자… "상품성 나빠"


    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ISA 가입자는 작년 말 현재 239만명이다. 상품이 출시된 작년 3월엔 한 달 동안 120만명이 가입했고, 그다음 달에도 57만명의 가입자가 몰릴 정도로 인기였다. 최근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작년 12월엔 해지 고객이 더 많아, 가입자가 1만5000명 줄어드는 등 증가세가 꺾였다.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게 ISA 인기가 시들해진 가장 큰 원인이다. 대표적인 게 의무 가입 기간이다. ISA의 가장 큰 장점은 순소득(전체 수익에서 손실을 뺀 것)에 대해 200만원까지 비과세하는 세제 혜택인데, 기본적으로 의무 가입 기간 5년을 채워야 한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투자는 '환매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익을 회수하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5년간 환매를 못하게 막아놓은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라며 "최근 증권사나 은행 창구에는 급히 자금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ISA 계좌를 해지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증권사는 고객들에게 ISA 대신에 작년 2월 도입된 '비과세 해외주식투자 펀드' 가입을 더 권장하는 추세다. 이 상품은 해외 주식에 60% 이상 투자하는 펀드의 수익에 대해서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한 증권사 상품 판매 팀장은 "같은 비과세 상품이라도 ISA 는 비과세 한도가 순소득 200만원까지인 반면, 비과세 해외 펀드는 제한이 없다"며 "요즘처럼 해외 증시가 상승세일 때 ISA 대신 언제든 환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해외펀드를 선호하는 고객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가입 요건도 지나치게 제한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ISA는 가입 대상을 '직전연도 근로소득·사업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소득 증빙이 어려운 전업주부나 은퇴자는 여윳돈이 있어도 가입하기 어렵다. 시중은행의 ISA 담당자는 "직장인보다 은퇴자가 5년 동안 목돈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 자금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은퇴자들이 ISA에 가입할 길을 막아놓으니 고객을 확장할 여지가 적다"고 말했다.


    ◇"금융사만 수수료 챙겨" 비판도


    까다로운 조건에 비해 수익률도 썩 좋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증권사가 알아서 투자자 자금을 굴리는 '일임형 ISA' 상품 193개 중 최근 6개월 수익률이 1%도 안 되는 상품은 총 85개로 전체의 44%에 달했다. 6개월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상품도 33개(17%)나 됐다. 수익률 자체가 낮다 보니 고객 만족도도 떨어졌다. 일각에선 은행·증권사만 수수료로 배를 불렸다는 지적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작년 11월 말 기준으로 6개월 이상 운용된 ISA 상품 181개를 조사했더니 평균 수수료율은 0.89%였던 반면, 수익률은 0.0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이나 증권사가 ISA 계좌를 운용하면서 채권 투자를 많이 했는데, 작년 말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이 겹치면서 채권 가격이 많이 떨어져 손해를 본 탓에 최근 수익률이 저조한 것"이라며 "애초부터 5년짜리 장기 투자 상품으로 시작한 만큼 아직 수익률이 저조하다고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ISA 제도 개선 가능할까


    ISA 의 성패(成敗)는 올해 금융 당국이 상품성 개선에 성공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올 3분기에 ISA 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 당국과 금융투자협회 등은 현재 일반 가입자 200만원, 서민 가입자 250만원인 ISA의 비과세 한도를 2배로 올리고, 60대 이상으로 ISA 가입 대상 확대, 1년에 1번 중도 인출을 허용하는 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 계획대로 제도가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세제 혜택이 확대될 경우 세수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제도 개선에 소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더욱이 책임지는 걸 가장 두려워하는 금융 당국의 속성을 감안하면, ISA 제도 개선도 미봉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금융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ISA(individual savings account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예금·펀드·파생결합증권(ELS) 등 여러 금융상품을 한꺼번에 담아 통합 관리하면서 분산 투자할 수 있는 계좌를 말한다. 매년 2000만원까지 넣을 수 있다. 5년 의무 가입 기간(총급여 5000만원 이하, 만 15~29세는 3년)을 채우면 수익 200만원에 대해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200만원을 넘는 부분은 9.9%(지방세 포함) 분리과세된다. 투자자가 금융상품을 고를 수 있는 '신탁형 ISA'와 금융회사에 투자를 맡기는 '일임형 ISA' 등 두 종류가 있다. 2018년 12월 31일까지 가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