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M&A 큰 그림 누가 그리나" 혼돈의 삼성

    입력 : 2017.03.02 09:38

    [미래전략실 공백 후유증]


    삼성 임원 - "안전장치 사라져 신규투자 부담"
    정부 차관급 인사 - "삼성 협조 구할 때 누굴 만날지"
    새로운 경영 기대감도 - "의사 결정 투명해져 신뢰 회복"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해체를 발표한 다음 날인 1일. 미전실이 입주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40~41층은 한산했다. 미전실 사무실은 휴일에도 팀장과 임원들이 대부분 출근, 그룹 현안을 챙기는 걸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자리를 비운 임원이 많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짐을 싸기 위해 나온 직원들 모습만 간간이 보였다. 삼성 안팎에선 경영 쇄신안에 대한 기대와 함께 '미전실 공백'에 따른 혼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섞여 나오고 있다. 삼성 계열사 한 임원은 "대형 인수·합병(M&A)이나 투자를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을지 나부터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정부 부처 차관은 "산업 정책 관련 협조를 구할 때 미전실을 창구로 활용했는데 이젠 누구와 이런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공백 우려와 쇄신 기대 엇갈려


    삼성 내부 직원들은 미전실 해체 이후 인사나 투자와 관련한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당장 미전실 소속 임원 60여명 거취가 문제다. 한 계열사 임원은 "상당수가 삼성전자행(行)을 원하겠지만, 모두 전자에서 소화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이 경우 이들이 계열사 전반으로 흩어지면 이에 따른 연쇄적인 임원 인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연말에 하려다가 '최순실 사태' 수사로 미룬 사장단·임원 인사도 안갯속이다. 계열사들이 3월 하순 주주총회를 열 예정이라 그전에 이사회를 열어 신임 사장을 선임할 것이란 관측도 있으나, 5월로 예상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 이후 결정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임원 인사를 총괄했던 미전실 인사팀이 없어지면서 갖가지 억측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미전실이 주도해 최종 결정하던 대규모 투자도 앞으론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바이오와 전장(電裝), 인공지능(AI) 등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신사업 투자에 대해 신속한 의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룹 성장 동력 육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삼성 현직 임원은 "계열사 독립 경영 시 CEO(최고경영자)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면서 장기 투자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전실 해체로 새로운 경영 문화가 정착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이사회 권한을 강화하면서 미전실이란 '밀실'에서 모든 게 이뤄지던 과거와 달리 더 투명한 경영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자 계열사 임원은 "이사회를 거치다 보면 의사결정 속도는 늦어지겠지만, 과정이 투명한 만큼 결과에 대해 회사 안팎에서 신뢰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미전실이 인사·투자 등 주요 사안을 결정해 계열사로 내려 보내는 것에 대해 거부감도 있었다"며 "미전실 해체가 상명하복 조직 문화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불똥 튀나" 재계 안팎 촉각


    미전실 해체로 인한 혼란은 삼성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주요 대기업 대관·홍보·인사 담당 임원들은 삼성이 전날 발표한 쇄신안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일부는 친분이 있는 삼성그룹 관계자를 상대로 정보 수집에 나서기도 했다. 재계는 맏형 격인 삼성의 변화가 다른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5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삼성이 대관 조직을 해체하면서, 다른 기업들도 당장 기존의 대관 업무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 해체를 발표한 지난 28일, 미전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의 한 출입문에 '닫혔음(closed)'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뉴시스


    정부와 정치권도 삼성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산업·경제 정책을 수립하면서 민관 합동 투자 등 기업의 협조가 필요할 때, 삼성과 우선적으로 협의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까지는 미전실 담당자를 만나면 됐으나, 앞으로는 모든 계열사를 일일이 상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쏠림 현상' 심해질 듯


    삼성 안팎에선 미전실 해체 후 각 계열사가 사업 조정을 하거나 투자를 함께 할 경우, 삼성전자·물산·생명 등 주력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진행할 것으로 본다. 특히 이 중에서도 삼성전자의 역할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지난달 초 삼성그룹의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는 삼성전자가 앞장서 진행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이 전자 계열사 CFO(최고재무책임자)를 소집해 회의를 가진 뒤 탈퇴를 결정했고, 이후 다른 계열사들이 줄줄이 전경련 탈퇴서를 제출했다.


    이번 쇄신안에 포함된 '외부 기부금·출연금 요건 강화'도 삼성전자가 지난달 이사회에서 결정하면서 나머지 계열사들로 확산됐다. 삼성 고위 임원은 "그룹 차원 지침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삼성전자의 움직임을 보고 눈치껏 거기에 맞춰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