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계열사 각자도생... 그룹 이름의 모든 행사 폐지

    입력 : 2017.02.28 09:29

    [미래전략실 임직원 200명, 내달 1일자로 계열사 복귀]


    - 그룹 해체 수준의 혁신안
    그룹 홈페이지·블로그도 폐쇄… 공채·사회공헌 축소될 가능성


    - 경영난 겪는 계열사 운명 불투명
    "계열사 중복사업 조정이나 고졸·지방대 출신 채용 확대 등 미전실 순기능 사라지나" 우려


    삼성그룹은 3월 1일 자로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소속 200여명 임직원에 대해 계열사 복귀를 명하는 인사를 내린다. 다음 달 5일까지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40~42층에 있는 미전실 사무실도 모두 비우기로 했다. 이 건물 41층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무실도 없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독립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미전실의 기존 기능을 대체할 조직을 두지 않을 것"이라며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전실 해체로 인한 일시적 혼란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이 특검의 이 부회장 기소에 맞춰 이르면 28일 '그룹 해체' 수준 내용을 담은 경영 쇄신안을 발표한다. 그동안 삼성그룹은 전문 경영인 체제가 탄탄하게 유지된 만큼 경영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등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제일기획처럼 매각 대상이었던 일부 계열사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계열사 간 중복 사업을 조정하거나 그룹 차원에서 벌인 고졸·지방대 출신 채용 확대 등 그동안 미전실이 수행한 순기능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계열사 각자도생 시대


    삼성그룹은 '그룹 해체' 수준 쇄신안을 준비해 마지막 발표 시점을 조율 중이다. 발표 시점은 특검이 28일 이 부회장 등을 기소한 직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부회장 의지에 따라, 쇄신안 발표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앞에 사기(社旗)가 걸려 있다. 미전실 해체에 따라 소속 임직원 약 200명은 내달 5일까지 사무실을 모두 비워야 한다. /남강호 기자


    이번 경영 쇄신안에는 미전실 해체 후 그룹 경영 방식에 대한 구체적 밑그림보다는, 계열사 독자 경영과 이사회 강화 등 선언적인 내용이 주로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미전실이 그동안 주도했던 사업 재편이나 인사·채용, 경영진단 등 고유 업무는 바로 중단한다.


    미전실이 사라지면서 삼성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하던 대부분 행사는 폐지될 전망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던 수요사장단 회의가 없어지고, 연말 CEO(최고경영자) 세미나도 폐지한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상'도 없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그룹 홈페이지와 블로그도 문을 닫고, 그룹이 주관하던 사장단·임원 인사는 각 계열사 이사회 등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그룹 컨트롤타워가 없어지더라도 별도의 전체 사장단 협의회는 만들지 않을 방침이다. 각 회사끼리 사업 조정 등 협의할 내용이 있으면, 전자·물산·생명 등 주력 계열사 사장이 회의를 소집해 해결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각 계열사 자율·독립경영을 강조하지만, 결국엔 삼성전자·물산·생명 등 3개 축으로 나눠 업무 조율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2008년 삼성특검 이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차명계좌를 실명전환한 뒤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으로 손해를 본 부분에 대한 보전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의식이 없는 이 회장 재산을 본인 동의 없이 처분하면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삼성이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만 클 것"이라면서 부인했다.


    ◇부실 계열사 관리 등 불확실성 커져

    미전실 해체에 따른 공백도 불가피하다. 우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경영난을 겪고 있는 계열사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미전실은 2015년 삼성중공업이 1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자, 공정 단계별 문제점을 분석하고 경영 효율화 방안을 제시했다. 2013년엔 삼성전자 경영혁신팀이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해 경영진단을 실시했는데 이 역시 미전실이 조정한 사안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등 매각을 추진했거나 매각설이 도는 사업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계열사 매각은 그룹 차원 결단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성이 2014~2015년 흑자를 기록하던 화학·방산 계열사를 매각한 것도 당장의 수익보다 그룹의 사업 구조를 핵심 계열사 위주로 바꾸겠다는 이 부회장 의중을 반영한 것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 독립 경영이 강화되면, 그룹 차원에서 부실기업을 관리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비(非)주력 계열사 매각을 통한 그룹 재편 작업도 상당 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열사 독립 경영을 강화하면, 삼성그룹 전체 공채 규모가 줄고 사회공헌활동도 위축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공채 규모는 미전실이 계열사 인사 수요를 취합한 후, '취업난 해소' 차원에서 이보다 늘려 실시하곤 했다"며 "하지만 계열사별로 공채하기 시작하면 이런 '플러스 알파(+α)' 채용은 어렵다"고 말했다.


    또 미전실이 지방 인재 배려 차원에서 현재 지방대 출신 채용 비율을 25% 선에서 35%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이 또한 불투명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시행했던 저소득층 고교생을 지원하는 장학제도, 저소득층 출신 특채 등은 미전실 작품이었다"면서 "그룹 전체 이미지보다 수익성을 더 중요시하는 계열사 처지에선 이런 사회공헌활동에 소극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