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직접 굴리는 퇴직연금, 판 커졌다

    입력 : 2017.02.21 10:50

    작년, 전체 퇴직연금 중 24% 넘어
    임금피크제 따른 손해 피하려 회사가 운영하는 DB형서 이동
    운영방법 따라 성적 극명히 갈려… 업계, 타깃 데이트 펀드 속속 출시


    근로자들이 노후에 대비해 가입하는 퇴직연금의 중심축이 개인책임형(DC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DC형 퇴직연금이란 회사가 직원 퇴직연금 계좌로 매년 한 달치 월급을 넣어주면 근로자 스스로 알아서 운용하는 연금제도를 말한다. 근로자들이 퇴직할 때 일정 수준 금액을 보장해주는 회사책임형(DB형) 퇴직연금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근로자가 굴리는 DC형 퇴직연금 적립액은 지난해 6월 30조원을 처음 돌파했고, 전체 퇴직연금 내 비중도 24%(9월 말 기준)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60세 정년 의무화로 임금피크제 이슈가 맞물리기 때문에 2017년은 DC형 퇴직연금이 확산되기 시작하는 원년(元年)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장은 "DB형에 가입 중인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의 경우 앉아서 손해 보지 않으려면 DC형으로 갈아탈 수밖에 없다"면서 "저금리 장기화와 임피제 도입 등으로 오는 2020년엔 DC형 가입자 수가 DB형을 추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DB형 퇴직연금은 퇴직 직전 3개월치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책정하는데, 임금피크제로 급여가 깎이면 퇴직금도 덩달아 줄어들게 된다. DB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DC형으로 갈아타려면 회사가 DB형과 DC형을 모두 도입한 곳이어야 한다.


    ◇지난해 퇴직연금 성과는 1%대로 부진


    DB형 퇴직연금은 퇴직할 때까지 급여가 꾸준히 오른다는 가정하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임금 인상률마저도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선 꼭 그렇지도 않다. 권순길 신한금융투자 과장은 "최근엔 근로자 수가 적은 중소기업들이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은 이직도 많고 임금이 제자리인 경우도 많아 근로자나 회사 모두 DC형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DC형 퇴직연금의 승패는 가입자가 어떻게 운용을 하느냐에 달렸다. 지난해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평균 수익률은 1.71%로 DB형 가입자(1.81%)보다 오히려 나빴다. 박범진 삼성증권 부장은 "DC형 가입자는 임금 인상률보다는 운용 수익이 높게 나와야 가입한 보람이 있는데 고정 금리형 상품에 주로 투자하고 주식시장도 부진해 1%대 성과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일부는 절세 목적에서 DC형을 선택하기도 한다. 게임 회사 임원인 황모씨는 지난해 퇴직연금에 가입하면서 DB형과 DC형을 섞은 '혼합형'에 가입했다. 황씨는 "경영 성과급을 DC형 퇴직연금 계좌로 받으면 나중에 퇴직소득세로 내면서 절세할 수 있다고 해서 혼합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DC형 가입자 겨냥한 TDF 속속 출시


    대기업 부장인 홍모씨는 지난 2010년에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해 펀드를 굴리면서 연평균 5%대 성과를 올리고 있다. 홍씨는 "(회사보다) 내가 운용을 더 잘해서 수익을 낼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 부장 같은 경우는 드물다. DC형 가입자의 80%는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으로 자금을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송인근 한투증권 부장은 "퇴직금은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DC형에 가입한 근로자들조차 손해 보지 않는 투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운용사들은 DC형 가입자들을 겨냥해 이른바 타깃 데이트 펀드(Target Date Fund)를 속속 내놓고 있다. TDF란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일반화되어 있는 상품인데, 투자자의 생애 주기에 맞춰 자동으로 지역별 주식·채권 비중을 조절해주는 연금 펀드다. 지난해 4월 삼성운용이 미국 캐피탈그룹과 제휴해 처음 TDF를 내놔 총 700억원을 모았고, 설정 이후 6.4%의 양호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한투운용, KB운용도 각각 미국 티로프라이스, 미국 뱅가드와 제휴해 TDF 신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