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 후폭풍... 진짜 위기가 시작됐다

    입력 : 2017.02.16 10:24

    [내일 파산 선고… 부산신항 한진해운터미널 찾아가보니]


    축구장 60개 넓이 야적장 한산… 크레인 54개 중 4기만 작업 중
    해운 관련 업체 수백곳 모여있는 부산 중앙동 거리도 활기 잃어
    하역 관련 업체들 줄도산 위기… 관련 실직자 전국 1만명 넘을 듯
    전문가들 "지원 정책 마련 시급"


    13일 오전 한진해운이 모항(母港)으로 삼던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해운터미널. 축구장 60여개 넓이 69만㎡(약 21만평) 야적장(야드)에는 코스코(COSCO), 케이라인(K-LINE) 등 외국 선사 컨테이너가 2~3단으로 쌓여 있었다. 원래 이 자리엔 '한진' 로고가 박힌 컨테이너가 5~6단으로 성(城)을 이루던 곳이다. 한진의 빈 컨테이너 1000여개는 야드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2만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3척을 동시 접안할 수 있는 1.1㎞ 길이 안벽에는 선박이 단 한 척도 없었다. 선박에서 컨테이너를 육상으로 내리는 크레인 12대는 모두 멈췄고, 컨테이너를 차량에 옮겨 싣는 크레인 42기 중 4기만이 작업 중이었다. 터미널 운영 관계자는 "작년 9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컨테이너 물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1977년 세워져 한때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선사였던 한진해운이 오는 17일 법원 파산 선고를 앞두고 있다. 한국 원양 해운업의 시초인 한진해운이 파산선고와 함께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진해운 사태는 '파산'으로 끝나지 않고 후폭풍이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한진해운 사태 끝나지 않았다


    이날 오후 부산역 인근 중앙동 거리. 소형 해운사, 배에서 쓰는 침구류 등을 파는 선용품 회사 등 해운 관련 업체 수백 곳이 모여 있어 '부산 해운업 1번지'로 불리는 곳이다. 평일 오후지만 거리에는 오가는 인적이 드물었다. 커피숍·식당 등 폐업한 업소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사무실이 텅 비면서 건물마다 입구에는 임대 광고가 붙어 있었다. 중앙동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온 차모씨는 "단체 손님 받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며 "요즘은 주말 중국 관광객 손님으로 겨우 먹고사는 수준"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 신항만에 위치한 한진해운 터미널 야적장이 비어 있다(큰 사진). 2015년 한진해운 로고가 박힌 컨테이너가 5~6단으로 빼곡히 차 있던 때와 대조적이다(작은 사진). /부산=김종호 기자


    이곳에서 만난 한 해운 대리점 사장은 "한진해운 후폭풍은 앞으로 서서히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상당수 전문 인력은 이곳을 떠났다. 매주 20척 가까이 부산항을 드나들던 한진해운 선박이 없어지면서 화물 검수, 컨테이너차량 운전, 수리·세척, 선용품 회사 등 관련 업체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작년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갈 때 한진해운 직원은 육상직원 671명, 해상직원 685명 등 1356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청산을 위한 수십명의 직원을 제외하곤 모두 회사를 떠났다. 육상직원 일부는 신설 선사인 SM상선과 현대상선으로 옮겼지만 상당수 해상직원은 실업자로 전락했다. 한진해운 해상노조 관계자는 "지난달 말 해상직원 400명이 한꺼번에 회사를 떠났다. 다른 직장 구하기도 어려워 대부분 실업자 신세"라고 말했다.


    부산신항 한진해운터미널 하역 관련 업체 직원 600여명 중 절반가량이 일거리가 없어 생계를 잃었다. 선박 관리 전문 업체인 유수에스엠은 작년 말 전체 직원 160명 중 40여명을 희망퇴직시켰다. 추가 감축도 고려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관리 선박 80여척 중 60여척이 한진해운 선박"이라며 "전체 매출의 60~70%를 담당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한진해운 파산에 따른 실직자가 부산에만 3000여명, 전국적으로 1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문가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박인호 부산항발전협의회 대표는 "정부가 한진해운이라는 기업 하나를 죽인 게 아니라 반세기 동안 쌓아온 한국 해운의 인적·물적 인프라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적선사가 없어지면서 해운 대리점은 공간(스페이스) 확보가 어려워졌고, 2배 오른 운임은 고스란히 국내 수출업체나 물류 업체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기준 한국의 컨테이너 수송 능력은 51만TEU였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 106만TEU의 절반 수준이다. 한종길 성결대 교수는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중장기 발전 계획이 필요한데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면서 "해운업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해운·화주·조선·정책금융 네 박자가 맞아 돌아갈 수 있도록 유기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명신 부경대 교수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유·무형 자산을 흡수할 수 있게 좀 더 과감한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