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불똥에 경영 올스톱... 눈 뜨고 해외시장 잃는 기업들

    입력 : 2017.02.15 09:41

    [이재용 영장 재청구]
    4개월째 시달린 재계, 극심한 '수사 피로감' 호소


    - 글로벌 사업 옴짝달싹 못해
    롯데, 중국 세무조사에 사업 흔들… SK, 해외 배터리 공장 건설 난항
    삼성, 9兆 들인 하만 인수 못챙겨
    재계 "특검, 수사 여력 없다면서 주요 총수들 出禁 안 풀어" 비판


    지난해 11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부지' 맞교환에 합의한 후 베이징의 '롯데슈퍼' 3곳이 폐점하고, 중국 사업장 200여 곳에 일제히 세무·소방·위생조사가 들어오는 등 롯데의 중국 사업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자 롯데 내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직접 중국 고위 인사를 만나 협상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결국 신 회장의 중국 출장은 무산됐다. 신 회장이 '최순실 특검' 수사로 출국 금지가 된 데다 기존의 대관(對官) 부서들도 줄줄이 수사 대상에 올라 있어 롯데는 이런 어려움을 정부에 호소할 창구조차 여의치 않았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은 평소 일 년의 3분의 1 이상을 해외에서 국가원수급 정치인이나 글로벌 기업인을 만나는 일정으로 채웠다"며 "하지만 지난해 '경영권 분쟁' 검찰 수사로 4개월간(6~10월) 출금돼 있다가 구속영장 기각 후 겨우 제대로 해보려는데 또다시 최순실 사건으로 출금된 상태"라고 말했다.


    15시간 조사 마친 이재용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 오전 1시쯤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검팀에서 15시간의 조사를 마치고 나와 차에 오르고 있다. 특검팀은 지난달 19일 첫 번째 영장 청구가 기각된 지 26일 만에 다시 이 부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특검, 수사 여력 없다면서도 주요 그룹 총수 넉 달째 출금 조치"


    작년 10월 27일 검찰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며 시작된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가 넉 달째 접어들면서 재계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검찰과 특검은 10대 그룹 중 9개 그룹을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그룹 총수를 포함해 50여 명을 피의자·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특검은 미르·K재단에 774억원의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을 뇌물 공여 혐의로 들여다보겠다는 입장도 밝힌 바 있다. 특히 삼성·SK·롯데 등 3개 그룹에만 5차례에 걸쳐 압수 수색을 벌였고, 재계 총수 4명에 대해 넉 달 동안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14일 특검은 "수사 기간을 고려했을 때 (삼성 이외) 다른 대기업 수사는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롯데 신 회장과 SK 최태원 회장에 대해 넉 달째 이어진 출금 조치는 풀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단 한 차례의 소환 조사조차 하지 않으면서 재계 총수를 장기간 출금하는 것은 무책임한 수사 편의주의"라고 말했다.


    ◇"글로벌 사업 흔들려도 꼼짝 못 해"


    요즘 국내 주요 그룹들은 정상적인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SK그룹도 중국 사업 곳곳에 경고등이 켜졌지만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말 예정이던 중국 배터리 공장 착공은 '한국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중단' 조치로 무기 연기했다. 또 화학 회사 '상하이 세코'의 유력한 인수자로 떠올랐지만 경쟁사인 스위스 기업에 밀렸다는 현지 뉴스까지 나오고 있다. SK 관계자는 "중국은 최고위급 간 인맥이 사업에 결정적이어서, 최태원 회장이 2006년 이후 매년 보아오 포럼에 개근하면서 중국 인맥 쌓기에 공을 들였다"면서 "하지만 특검 수사에 대비하느라 최 회장이 중국 출장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9조원을 베팅한 전장(電裝) 회사 '하만'에 대한 인수가 최종 결정되는 '하만 주총'(오는 17일)을 앞두고 있다. 하만의 일부 주주들이 삼성 인수에 반대하고 나섰는데, 이재용 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는 특검 수사로 '하만 대응'은 거의 못 하고 있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이런 판국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관련 청문회까지 열기로 하는 등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영장 재청구에 또 얼어붙는 재계


    그나마 재계는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영 정상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최근 이 부회장에 대해 특검 재소환 후 영장 재청구까지 이어지자 또다시 초긴장 체제에 돌입했다. CJ그룹은 2013년 5월 탈세 등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 4년째 비상 경영 중이다. 포스코와 KT&G 등도 장기 수사를 받았지만 주요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