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여행·만화... 무대 넓히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입력 : 2017.02.14 09:29

    [뭉칫돈 몰리며 '실탄' 두둑해지자 다양한 투자 대상 물색]


    작년말 약정액 62조2261억원… 공모 주식형 펀드 설정액 추월
    규제 완화·제도 개선 순풍타고 생활 밀착형 사업에 투자 늘어
    해당 시장 침체로 성장세 꺾이면 투자금 회수 어려워지는 문제도


    기업에 투자해 가치를 끌어올린 뒤 되팔아 차익을 올리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의 투자 판이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뿐만 아니라, 상조·여행·독서실·숙박·만화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으로 투자 대상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PEF로 뭉칫돈이 많이 몰려 '실탄'이 두둑이 쌓이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12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PEF의 출자 약정액은 62조2261억원으로, 국내 공모 주식형 펀드 설정액(62조1490억원)을 추월했다. 지난해 신규 등록한 PEF는 108개로, 2004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100개를 넘겼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국내 주식시장은 박스권에 갇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다 저금리가 오래 지속되면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PEF와 같은 대체 투자처를 찾는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해지는 PEF 투자 무대


    이달 초 3년 차 PEF인 LX인베스트먼트는 배낭·의류와 같은 여행용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트래블메이트'에 150억원을 투자했다. 전 세계적으로 저가 항공사가 늘어나면서 젊은 층의 여행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김충원 LX인베스트먼트 상무는 "해외에선 여행객들이 여행용품 전문업체를 통해 여행을 준비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예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고, 20~30대 젊은이들이 여행 전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용품을 구매하는 트렌드에도 주목했다"고 말했다.



    운용 규모가 3조원대로 토종 PEF 중엔 가장 덩치가 큰 IMM PE는 지난해 유료 웹툰(웹 만화) 플랫폼인 '레진코믹스'에 500억원을 투자했다. 통상 5~7년 뒤에 자금을 회수해야 해서 꾸준한 현금 흐름이 나오는 제조업을 선호하는 PEF 업계 특성을 고려하면, 웹툰처럼 실적 굴곡이 클 수 있는 업종 투자는 이례적이다. 송인준 IMM PE 대표는 "산업 환경이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과 모바일 위주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등장, 해외시장 진출 등을 내다보고 투자를 결정했다"면서 "전체 자금의 10~15% 정도는 모바일·바이오 등에 연계되는 미래지향적 성장 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MM PE는 향후 코스닥 상장을 통해 자금을 회수한다는 계획이다.


    VIG파트너스의 상조업체에 대한 650억원대 투자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트렌드를 감안한 것이다. VIG파트너스 측은 "아무리 경기가 나쁘다고 해도 장례식장 수요는 꾸준히 있다"면서 "고령화와 핵가족화로 상조 서비스는 급증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작년 말 유니슨캐피탈의 독서실 체인 '토즈(TOZ)' 투자는 실업이란 키워드와 연관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 자격증 준비에 나서는 고령자까지 시험공부를 위한 독서실 수요가 팽창할 것이다고 예상한 것이다.


    ◇모바일·고령화가 투자 키워드


    PEF의 투자 대상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란 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현재 PEF 자금의 대부분을 대는 국민연금과 같은 큰손들이 저금리 속에서 수익률을 올리려면 PEF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 당국이 창업·벤처 전문 PEF 제도를 새로 도입하는 등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시장엔 우호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PEF 수가 늘어나면서 투자처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모바일이나 고령화 같은 생활 밀착형 산업에 대한 투자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물론 생활 밀착형 산업에 투자한 PEF들이 높은 수익률만 올리고 있는 건 아니다. 지난 2013년 아웃도어 브랜드인 '네파'에 1조원대 투자를 집행했던 MBK파트너스는 투자 이후 아웃도어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성장세가 꺾이자 투자금 회수에 고심하고 있다. 또 일부 PEF들은 향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시장에서 PEF가 IPO를 통해 투자 자금을 회수한 적은 없다.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공모펀드와 달리, 소수의 개인·기관투자자들로부터 비공개로 자금을 모아 기업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한 뒤 되팔아서 차익을 올리는 펀드를 말한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회사 경영권을 인수한 뒤 기업 구조를 개선해 수익을 올리는 사모펀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