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파? 올인파?... '생존형 재테크' 양극화

    입력 : 2017.02.13 09:37

    [저성장·저금리에 펀드도 못믿어… 서민들 눈물겨운 재산 불리기]


    - 카드 다 꺾어버린 짠돌이형
    대출이자·사교육비 내면 빠듯
    노후 대비해 극도로 지출 줄여 하루하루 한정된 생활비만 써


    - 빚까지 내 올인 일확천금파
    "푼돈 모아봐야 대세 못바꾼다"고 위험·고수익 상품에 다걸기
    '인생 역전' 로또 판매액 급증


    직장인 임모(41)씨는 지난해 11월 '생활비 달력'을 구입했다. 생활비 달력은 30~40인치 TV 모니터만 한 크기의 판(板) 위에 1~31일까지의 날짜 주머니를 만들어 주머니마다 지폐를 꽂아놓고 매일 빼서 쓰게끔 만든 '절약 유도형 생활용품'이다. 포켓(pocket·주머니) 달력이라고도 부른다. 자녀 1명을 키우며 외벌이인 임씨는 생활비 달력에 평일에는 2만원,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1만원을 꽂아놓고 쓴다. 평일에는 2만원으로 직장에서의 점심 식사비와 후식 커피비 정도만 지출한다. 주말에는 최대한 외식을 자제하고, 1만원만 쓰는 생활을 한다. 임씨는 "대출 이자, 사교육비 등이 빠지면 월급에서 남는 돈이 거의 없는데 노후 대비까지 생각하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성장 시대, 생존형 재테크


    은행 예·적금 이자는 여전히 연 1~2% 수준에 머물러 있고, 경기 침체로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서민들의 '생존형 재테크'가 확산되고 있다. 생존형 재테크의 유형은 크게 2가지다.


    작은 주머니에 하루치 생활비를 꽂아 놓고 매일 빼서 쓰게 만든 '생활비 달력'. 초저금리에 경제 성장은 더딘 경기 침체기가 장기화하면서 서민들 사이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존형 재테크'가 확산되고 있다. /허니잼 제공


    임씨처럼 지출을 극도로 줄이기 위해 신용카드를 없애고 현금만 쓰는 '짠돌이'형이 있다. 생활비 달력은 이들의 약해지는 절약 의지를 다잡기 위한 도구다. 생활비 달력 판매업체인 형제통상 신민욱(35) 대표는 "새해 목표를 '생활비 절약'으로 정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연말과 연초에 주문량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형은 한탕을 노리는 '올인(다 걸기) 재테크'다. 어차피 푼돈을 모아봤자 대세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 돈을 빌려서라도 목돈을 마련해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대기업 직원 전모(33)씨는 5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1억원 넘는 돈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미혼인 전씨는 주식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인 원룸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전씨는 "월급만 모아서는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 구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라며 "열심히 공부해서 주식 투자로 연 10~20%의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씨처럼 빚까지 내서 주식 등에 뛰어드는 '고위험 투자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 등 예탁증권 담보 대출 잔액은 2014년 9조2536억원에서 2016년 12조8027억원으로 2년 사이 40%가량 늘었다.


    ◇펀드 투자, 개인투자자 신뢰 상실


    한탕을 노리는 서민 중에는 '로또 적금족(族)'도 있다. 매주 1만원씩 로또에 투자하다 보면 언젠가 1등이나 2등에 당첨될 수 있을 거라 희망을 품고 꾸준히 로또를 구입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복권 판매액은 2012~2015년 사이 12% 증가했다(3조1854억→3조5551억원). 2016년 상반기에는 1조8925억원어치가 판매됐는데, 지난해 전체로는 3조8000억원 가까이 판매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생존형 재테크가 각광받는 것은 저금리 영향이 크다. 연 2%짜리 적금을 1년간 월 20만원씩 넣는다면(원금 240만원), 세금 빼고 붙는 이자가 2만원이 조금 넘는다.


    중위험·중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금융 상품으로 펀드가 있지만, 원금마저 까먹는 저조한 실적 탓에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펀드 판매 잔액 기준으로 개인투자자 비중은 25%에 그치고, 75%는 법인·기관투자자가 차지했다. 10년 전에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57%였고, 금융 위기 때인 2008~2009년만 해도 50%대를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감소세가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펀드의 쇠퇴는 시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중국펀드의 경우, 지난 2007년 5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연간 16조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들였지만, 이듬해에는 ―50%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서민층의 재산 형성을 돕는 새 금융 상품을 적극 개발해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