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팔 비틀어 만들고... 외면받는 '핀테크 지원센터'

    입력 : 2017.02.13 09:26

    금융위, 업체들서 돈·인력 갹출… 상주직원 5명에 금융사 파견 4명
    전문성 떨어져 실질적 도움 못줘


    한달에 1억원 이상 비용 드는데 상담 건수는 하루 한 건도 안 돼
    금융위 "3월쯤 개선안 마련 계획"


    핀테크(금융과 정보기술의 결합)회사를 경영하는 사장 A씨는 얼마 전, 핀테크 관련 규제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하려고 금융위원회가 운영한다는 '핀테크 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금융위원회가 핀테크 업체를 돕기 위한 지원 조직을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안에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다. 그런데 센터 담당자는 "전화로 문의하지 말고 방문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전화나 이메일로 하면 안 되겠느냐는 질문에 이 담당자는 "우리도 방문 실적을 좀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방문을 유도했다. 강남에 사무실이 있는 A씨는 버스를 타고 판교까지 먼 길을 갔다. 그런데 은행과 카드사에서 나왔다는 담당자는 A씨가 관심 있는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출에 관해선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A씨는 "핀테크 지원센터의 요청으로 여러 날 반복해서 센터를 방문해 P2P 대출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고 왔다"며 "정보를 얻기는커녕 다 '털리고' 온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주도로 만든 핀테크 지원센터가 핀테크 업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커녕, 보여주기식 행정의 전형적인 구태(舊態)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별도의 예산을 책정하지 않고 은행·보험사 등 금융회사로부터 운영 예산을 갹출하는 한편 금융회사에 매일 상담 인력을 '공급'하도록 요청해 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핀테크 업체도 시큰둥해하는 센터에 돈과 인력을 언제까지 투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금융당국, "센터 운영비 13억원 내시오"


    최근 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에 통보한 '2017년도 핀테크지원센터 운영 예산 분담안'은 은행·보험사 등 금융회사에 올해 예산으로 총 13억원을 나눠서 갹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은행연합회와 손해·생명보험협회를 통해 금액을 분배하면 금융회사들이 돈을 모아 센터 운영비로 '상납'하는 형식이다. 금융위는 지난해에도 13억원을 걷어 행사와 센터 운영비 등으로 썼지만, 실제로 센터까지 가서 상담을 받은 핀테크 회사는 드문 형편이다.



    핀테크지원센터의 월별 상담 현황을 보면 지난해 11월 32건, 12월 15건, 1월 20건으로 하루 평균 한 건도 채 되지 않는다. A사처럼 전화를 걸었다가 '직접 찾아오라'는 요청을 받고 찾아간 업체를 포함한 수치다. 금융감독원 등이 파견한 상주 직원 5명을 제외하고도, 매일 금융회사의 상주 직원이 4명씩 상담을 위해 센터에 파견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담 건수가 너무 낮아 인력 낭비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시로 직원 교체 "전문성·책임감 떨어져"


    핀테크지원센터 홈페이지에 상담을 받았다고 게시된 핀테크업체 B사 사장은 "상담을 받으러 판교까지 간 기억이 없는데 왜 우리 회사 이름이 올라 있는지 모르겠다"며 "상담 건수를 집계해 공개하는 보여주기식 행정보다는 금융 규제나 화끈하게 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핀테크지원센터가 업체의 외면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금융회사 파견 인력들의 전문성이 대체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의 요청으로 금융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직원을 파견하다 보니, 업권마다 '당번'을 정하는 패턴이 제각각이다. 카드업계는 한 회사 담당자가 한 주씩 핀테크지원센터에 파견을 가도록 정해두고 있고, 시중은행은 3일, 지방은행은 매일 센터 담당자가 바뀐다. 증권사와 보험사는 '당번 주기'가 이틀씩이다. 이러다 보니 거의 매일 상주하는 직원의 조합이 바뀐다. 예컨대 지난 3일엔 신한은행·삼성카드·코리아에셋증권·메리츠화재 파견자가 나와서 상담을 했는데, 일주일 뒤인 10일엔 기업은행·신한카드·메리츠종금증권·현대해상 직원으로 모두 바뀌었다. 핀테크 업체 입장에선 지속성 있는 상담을 받기 어렵고, 금융회사 직원도 책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C금융회사의 핀테크 지원센터 담당 임원은 "파견 가는 직원이나 보내는 회사 모두 특별한 사명감이 아니라 의무감 때문에 돌아가며 센터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올해 초 업무보고 때 핀테크 발전 방안 중 하나로 '핀테크지원센터 기능 강화'를 내세웠지만 핀테크 업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예산이 책정되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업계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센터를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업계와 금융권의 의견을 수렴해 3월쯤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