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는 전경련... "직원 절반 자른다더라" 흉흉

    입력 : 2017.02.10 09:25

    [최악 상황 치달아… 회비 못 걷고 월급도 못 줄 판]


    - 차기 회장·부회장 못 구해
    기업인 중에 맡겠다는 이 없자 고위관료 출신까지 샅샅이 물색


    - 일부선 "재계 대표 단체 필요"
    美 200대 기업 CEO 협의체인 BRT가 쇄신 모델로 유력


    "곧 최대 50%까지 감원한다고 하더라." "A팀장은 후배들에게 떠날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더라."


    전국경제인연합회 직원들은 요즘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삼성과 LG가 공식 탈퇴하고, 현대차와 SK가 조만간 탈퇴를 예고하는 등 전체 회비의 절반을 책임지는 4대 그룹이 사실상 이탈하면서 전경련 직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이미 일부 직원들은 떠나고 있다. 작년 말 2년 차 신입 사원이 외국계 회사로 이직한 데 이어,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박사급 연구원 3명이 비슷한 시기 지방대학과 국책연구원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경련 관계자는 "상부에선 조직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일단 기다리고 있지만, 내부 동요는 심각하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이달 열리는 정기총회 이전에 올해 사업계획과 예산을 짜고, 회원사들에 회비를 통보해야 하지만 이 같은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회장·부회장 못 구하면 어찌 되나


    전경련의 존폐를 결정하는 관건은 이달 말까지 차기 회장을 구하느냐는 것이다.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부회장의 임기가 이달 말로 만료되고, 전경련 정관에는 2월 안에 회원사 총회를 열게 돼 있다. 허창수 회장을 비롯한 전경련 회장단이 차기 회장을 물색 중이지만,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설 연휴 전까지만 해도 한 대기업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을 맡으려고 했으나, 전경련에 대한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의사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인 중에 맡겠다는 사람이 없자, 회장단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덕수 전 총리 등 전직 고위 관료들과 접촉했지만, 모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내부에선 회장단과 사무국 임원들 간 갈등까지 불거지고 있다. 회장단이 김진현 전 과학기술부 장관에 혁신위원장을 제안했으나, 사무국 임원들이 "개혁을 주도할 차기 회장이 결정되기 전까지 보류해야 한다"고 반대해 무산됐다. 이와 관련, 전경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사무국 중심의 '이승철 부회장 사단'들이 혁신위원장 선임 반대를 주도했는데, 이는 자신들과 뜻이 맞는 차기 회장을 못 구할 경우 차라리 비상체제로 가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허창수 회장은 본인이 책임지고 차기 회장을 꼭 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허 회장이 최근 또 다른 유력 후보를 접촉해 회장 수락이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직 유지는 가능한가


    전경련이 600여 개 회원사로부터 걷는 회비 약 500억원 중 절반은 4대 그룹 몫이다. 전경련 임대수익 400억여 원은 건축 당시 부채의 원리금 상환과 건물관리비로 대부분 쓰고 있다. 회원사 회비로 인건비를 주고 사업을 하는 구조다. 전경련 관계자는 "해마다 정해진 예산에 따라 회비를 걷어 그해 대부분 지출하고 있어 유보 현금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 50층 건물의 13개 층을 쓰며 연 115억원의 임대료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 LG CNS가 올해 말 마곡지구로 이전하기로 돼 있어, 대신 입주할 기업을 찾지 못하면 임대료 수익의 30%가 한꺼번에 빠질 상황이다. 5000억원 상당 가치의 회관 부지는 전경련 자산이지만, 이자도 낼 수 없는 판국에 이를 담보로 더 이상 대출받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결국 회원사로부터 회비를 못 걷으면, 사업은커녕 인건비도 못 줄 형국이다.
    한 전경련 관계자는 "남은 회원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회장을 모셔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전경련의 재기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계에선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4대 그룹의 고위관계자는 "다음 정권이 누가 되든 전경련을 그대로 놔두겠느냐"며 "전경련은 '최순실 사태'를 통해 정권에 협조하는 개발시대식 기관이란 평판을 받은 것이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재계 대표 역할은 필요


    재계 일각에선 전경련을 해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본지와 통화에서 "차기 회장은 내가 갈 길은 아니지만, 재계를 대표할 단체는 필요하다"며 "전경련이 쇄신을 통해 좋은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전경련이 수십 년간 이어온 한미, 한일 재계회의 등 국제 네트워크가 한순간에 무너지면 회복되기 힘들고, 민관 협력 역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 같은 단체가 쇄신 모델로 유력시되고 있다. 200대 대기업 최고경영자들로 구성된 협의체로 미국 정부와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를 상대로 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전경련은 뿌리부터 바꾸는 조직 쇄신을 보여주고, 기업인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경제 발전과 국익을 도모하는 협의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