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전속고발제' 폐지 움직임... 재벌개혁 출발점 될까

    입력 : 2017.01.23 09:55

    [정치권 잇따른 폐지 주장… "중견·중소기업만 피해" 목소리도]


    - 신고·접수된 기업 대부분이 中企
    2015년 국내 공정거래 사건 84%, 中企 상대로 벌어져… 폐업 속출


    - 폐지 땐 대기업 제재 강화?
    검찰 기소보다는 약식청구 많아… 법원도 실형 선고한 적 거의 없어


    - 공정거래법 개정 바람직
    대기업 담합 사건은 처벌 강화, 中企 '불공정거래'는 완화 필요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한 기업에 대해 고발권을 독점 행사하는 '전속고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속고발제는 공정거래관련 법 위반 사건에 대해 공정위에만 고발권을 인정하는 제도다. 잦은 형사 고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전속고발제는 지난 대선 때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의 핵심 쟁점이었고 박근혜 대통령도 폐지 공약을 냈다. 하지만 당시엔 보완 장치를 만드는 선에서 정리됐다. 여야는 2013년 전속고발제를 살려두는 대신 의무고발제를 신설했다. 의무고발제는 검찰,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 등 4개 기관이 요청할 경우 공정위가 반드시 고발하도록 하는 제도다.


    최근 탄핵 정국에서 각종 개혁 어젠더를 강조하고 있는 야당 측은 '전속고발제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전속고발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고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결판을 낼 방침이다. 현재 국회엔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과 이언주 의원이 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각각 올라가 있다. 국민의당도 손봐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는 입장이라 전속고발제는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그동안 유보적이던 여당도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높아지면서 입장이 바뀌고 있다.


    ◇야당 "공정위 고발 권한 행사에 소극적"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앞으로는 누구나 공정거래법을 어긴 기업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된다. 야권은 "공정위가 재벌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전속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며 "누구나 대기업을 고발할 수 있어야 제재도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완 장치로 마련한 의무고발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공정위는 "의무고발제가 도입돼 전속고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하지만 2013년 이후 의무고발제에 따라 고발된 사건은 공정위 전체 고발 건수(190건)의 8%인 16건에 불과하다. 이언주 의원 측은 "다른 기관들은 전담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적극적으로 고발 요청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의무고발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반대 측 "중소·중견기업 피해 더 클 것"


    하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반(反)재벌 정서가 강한 상황에서 논의가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경쟁법 전문가들은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면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의 피해가 클 것"이라며 "경영 상황이 열악한 중소·중견기업은 법무 조직을 갖춘 대기업과 달리 형사 고발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정위에 신고가 접수된 기업의 대다수(84%)는 중소·중견기업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5년 신고가 접수된 기업은 총 2678곳이었는데 이 중 재벌이라고 불리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계열사는 15.9%인 427곳이었다. 나머지 2251곳(84.1%)은 중소·중견기업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이 수가 더 많을 뿐만 아니라 경영 상황이나 근무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인구 1만명당 고소·고발 건수가 80건으로 일본(1.3건)보다 60배는 많다"며 "형사 고소·고발이 남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폐지하면 대기업 제재 강화될까


    전속고발제 폐지가 곧 대기업에 대한 제재 강화로 이어질지 의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면 검찰이 1차적으로 공정거래 사건을 판단하는 기관이 되는데 그동안 검찰은 공정거래 사건을 정식 재판에 넘기기보다 대개 '벌금형'으로 끝나는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검찰연감 등에 따르면 검찰은 2010~2014년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446건 중 절반인 229건(51.3%)을 기소했는데 이 중 107건(47%)에 대해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표시광고법 사건은 295건 중 6건(2%)만 정식 재판으로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도 2010~2014년 1심 판결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적이 한 건도 없었다. 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103건 중 78건이 벌금형이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공정위의 역할이 소극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2013~2015년 공정위의 고발 건수는 153건(전속고발제가 적용되는 법 위반 사건 기준)으로, 일본(2012~2014년 기준 2건)이나 캐나다(9건)보다 많다.


    이기종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전속고발제를 두고 있는 일본도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과징금 등 행정처분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게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연평균 30~40건을 맴돌던 고발 건수가 2013년부터 60~70건 수준으로 뛰어오른 것에 주목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의무고발요청권을 가진 다른 기관이 요청하기 전에 사건을 조사하려고 하다 보니 고발 건수도 더 증가한 것 같다"며 "아직 시행 초기라 의무고발요청은 적지만 공정위 업무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위 "고발요청 기관 확대" 대안 제시


    이기종 교수는 "이 기회에 공정거래법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대기업들이 많이 저지르는 담합 사건은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대신 중소·중견기업이 많이 적발되는 불공정거래 사건 등은 형사 처벌 규정을 없애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공정거래법 위반에 엄격한 미국도 악질적인 담합 사건 위주로 형사처벌을 내린다"고 말했다.


    전속고발제를 전면적으로 폐지하기에 앞서 검찰의 전문성을 높이는 등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고발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을 대폭 확대하는 대안을 내놨다. 정 위원장은 "정부 기관은 물론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 같은 민간 단체에도 요청권을 줘 의무고발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속고발제


    공정거래 관련 법 위반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에만 고발권을 인정하는 제도. 잦은 형사 고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문 기관인 공정위를 거쳐 검찰에 고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등 6개 공정거래 관련 법에 전속고발제가 규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