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가 희망이다, 작년 투자액 사상 최고

    입력 : 2017.01.23 09:43

    [美·中 감소하는데 한국만 이례적]


    - VR·AR·AI·바이오로 몰리는 돈
    글로벌 시장 목표로 뛰는 양질의 스타트업 대거 늘어


    - '가우디오랩'의 음향 기술 쾌거
    사용자 위치 따라 소리방향 변해… 美·中 제치고 VR 국제표준으로


    지난해 국내외 경기 불황 속에서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2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작년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신규 투자액이 2조1503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2조858억원보다 3.1%가 늘어나, 벤처 투자액을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1998년 이후 가장 많은 투자를 이끌어냈다. 미국의 작년 벤처 투자액이 2015년에 비해 12% 감소하고, 중국도 작년 3분기까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25.4% 감소하는 등 전세계 벤처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한국은 예상 밖의 투자 실적을 낸 것이다. 김광현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센터장은 "국내 경기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도 세계를 무대로 뛰어드는 양질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이 늘어나면서 벤처 투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벤처에 투자 몰려… 바이오 급증


    중기청에 따르면 작년 벤처 투자액의 37%인 7900억원이 창업 3년 미만인 초기 기업에 몰렸다. 2015년보다 1500억원 가까이 늘어났다. 업체 수로 보면 벤처 투자를 유치한 1191개 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46%가 초기 기업이었다. 정부와 투자업계에서는 창업 3년 미만의 기업을 초기 기업으로 분류한다. 박종찬 중기청 벤처투자과장은 "지난 10년간 정부의 모태펀드가 출자한 벤처펀드 수익률을 살펴보면 초기 기업에 투자했을 때 연평균 수익률(5.23%)이 은행 금리보다 훨씬 높다"며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는 위험 요소가 많지만 성공했을 때 돌아오는 이익이 커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가우디오랩'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VR(가상현실) 기기와 헤드폰을 착용하고 음향 콘텐츠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설립된 가우디오랩은 작년 벤처 투자사들로부터 50억원을 투자받았다. 국제 표준으로 선정된 가상현실(VR) 영상용 음향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투자업계에서는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창업의 질(質)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벤처투자사 캡스톤파트너스 송은강 파트너는 "투자할 기업을 물색하기 위해 액셀러레이터(창업육성기관) 졸업식에 가보면 새로 개발한 기술이나 서비스를 바탕으로 창업하는 경우가 크다"면서 "그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오디오기술 스타트업 가우디오랩은 사용자의 위치에 따라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바뀌도록 오디오 신호를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이 기술은 2014년 미국의 퀄컴, 중국의 화웨이 등을 제치고 VR(가상현실) 영상용 오디오 국제표준으로 선정됐다. 이어 작년 9월 한국투자파트너스·LB인베스트먼트·소프트뱅크벤처스 등 3개 벤처투자사로부터 50억원을 투자받았다.


    분야별로 보면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등 IT(정보기술) 분야가 5444억원으로 가장 많은 투자를 받았다. 김기준 케이큐브벤처스 상무는 "작년 말 VR·AR(증강현실)·AI(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투자가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의약품·의료기기 등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투자가 많았다. 총 4667억원으로 작년(3137억원)보다 투자가 50% 가까이 늘어났다. 한국투자파트너스 관계자는 "규모는 작지만 우수한 인력들이 모여 새로운 의약 물질을 개발 중인 벤처기업들이 많다"며 "작년 투자 가운데 약 30%가 생명공학 관련 기업"이라고 말했다.


    ◇성공 벤처도 투자 나서


    벤처투자 붐은 올해에도 지속할 전망이다. 작년 조성된 벤처펀드 규모가 3조1998억원으로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다. 이렇게 모인 벤처펀드 자금이 올해 창업 기업들에 투자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은행과 대기업, 엔젤투자자 등 민간 자본의 투자 규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작년 벤처펀드 조성액의 63.1%(2조188억원)가 민간에서 유입될 정도다. 백여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우리도 실리콘밸리처럼 민간 자본 중심의 벤처 생태계가 생겨나고 있다"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창업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민간 투자가 확산되는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


    성공한 벤처기업들이 초기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위해 벤처캐피털을 설립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중기청에 따르면 작년 신규로 등록한 벤처캐피털 13곳 가운데 8곳이 창업 기업이 만든 투자사였다. 3년 전에는 1개에 불과했다. 모바일게임 기업 파티게임즈는 작년 4월 창업투자사 '스프링캠프'를, 바이오 기업 엑세스바이오 등은 작년 8월 '더웰스인베스트먼트'를 만들었다. 게임 기업 스마일게이트의 벤처 투자사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의 경우 작년 전체 창업투자사 가운데 둘째로 많은 금액을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구영권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스마일게이트는 액셀러레이터(창업육성기관)를 운영하면서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과 투자 상담 등을 돕고 있다"며 "성공한 벤처기업이 투자를 통해 신생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면 창업 생태계가 더 튼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