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영 건축세계㈜ 사장 "위기의 잡지산업, 지금이 혁신의 골든 타임"

  • Editor 이호택

    입력 : 2017.01.19 17:43

    정광영 건축세계㈜ 사장은 맨손으로 시작해 잡지 하나만을 가지고 성공을 이뤄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77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서적 배달일로 시작한 잡지쟁이의 삶은 어느새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를 지탱한 뿌리가 되었다. 사옥까지 있는 잡지사의 사장으로서 안정된 삶을 영위할 만도 하지만 돌연 그는 42대 (사)한국잡지협회 회장 출마를 선언했다. 잡지산업의 몰락을 더 이상 좌시할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정광영 건축세계㈜ 사장 /Photographer 김성호


    추락하는 잡지산업, 내부로부터의 혁신 필요


    "최근 몇 달간 100명이 넘는 잡지사 발행인과 관계자를 직접 찾아가 만났습니다. 잡지산업의 위기를 어떻게 하면 함께 타파할 수 있을까 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도 있지만 현장에서 뛰고 있는 발행인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힘겨운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잡지산업의 위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발달은 사람들을 더 이상 인쇄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굴지의 대형 신문사 조차도 발행 부수를 대폭 축소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당장 잡지산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사실상 수익을 광고에 크게 의존하던 잡지업계에서 광고를 지원하는 기업의 수 역시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여전히 한국잡지협회에는 520여 명의 발행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식 문화 산업으로서 잡지의 가치는 아직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명감으로 잡지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현장을 뛰고 있습니다. 협회가 제대로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동기부여 창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는 이미 잡지산업에 대해 국민정서 함양의 대원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잡지진흥법률을 제정한 바 있다. 이것에 의해 잡지진흥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미 지난 5년 동안 1차 5개년 계획이 진행됐고, 이제 2차 5개년 계획을 수립과 함께 실행해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에 대한 부분이 실질적으로 잡지산업 전체를 살리고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 잡지인은 많지 않다.


    "지식산업으로서, 문화 콘텐츠의 가치로서 잡지에 대한 중요성을 정부에서 공감하고 국민적 동의를 얻어 법률을 제정했다면 가시적인 지원 성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그 동안 정부에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과연 잡지 발전을 위해 진정한 정책 지원이 이뤄졌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당장 협회부터 스스로 바뀌어야 합니다. 정부 정책 지원에 대해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능동적으로 혁신 안을 만들고 과감히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광영 사장은 내부로부터의 혁신을 우선 주장한다. 협회 조직 및 사업의 대 혁신, 잡지산업 발전 현실화, 윤리적이고 투명한 협회 운영, 회원사 콘텐츠 품질 향상 및 수익 창출, 발행인 역량 개발 및 위상 제고, 회원 복지와 행복 창출 등 6가지 혁신가치를 실현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잘못된 관행이나 실패가 명확한 사업에 대해서는 과감히 정리하고 개편하는 것이 맞습니다. 협회가 먼저 운영의 투명성을 추구하고 효율적 운영을 통해 비용 절감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확보된 비용은 당연히 회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업들을 창출해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완전한 혁신, 완벽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자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상생과 발전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역전의 명수, 위기에는 늘 기회가 있었다


    정광영 사장이 과감한 혁신을 주장하며 자신감 있는 행보를 보이는 데에는 40년간 잡지업계에 몸담으며 겪어온 그만의 경험이 바탕에 있다.


    공교롭게도 그는 늘 최악의 위기 상황을 오히려 드라마틱한 성장의 기회로 만들었다. 1995년 불과 다섯 명으로 출발한 <건축세계>는 30여 명의 직원을 두고 7층 건물의 사옥이 있는 건축 잡지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불과 창간 2년째인 1997년말에는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존립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적도 있었다. 내수 경기는 악화 일로로 치 닿는 현실에서 그는 오히려 시선을 해외로 돌렸다.


    "도저히 내수시장만을 바라보며 사업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이대로 계속 적자를 감수하다가 앉아서 폐간을 맞이하느냐 과감히 새로운 도전을 하느냐의 기로에 서서 당연히 제 선택은 후자였습니다."


    1998년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서가 깊다고 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답사하게 된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처음으로 작은 부스를 임대해 직접 도서전에 참여하기 시작하며 수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전세계 출판과 관련된 관계자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상대적으로 출판문화가 낙후된 나라들에게 한국의 전문 잡지는 경쟁력이 있었다. 독일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인도, 미국까지 전세계의 출판 관련 박람회에 참여하며 수출국을 확장해 나갔다. 공교롭게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치러지자 대한민국에 대한 세계적인 위상과 인지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한국 잡지의 수출의 길을 열며, 그는 수출로만 100만 달러에 이르는 매출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여전히 건축세계는 수출에 의한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에 이를 정도이다. 위기 상황을 과감한 혁신으로 전환한 결과였다.


    "이상하게 저는 오히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매번 성장을 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통해 수출을 시작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의 사옥은 리먼 사태로 인해 부동산 경기가 폭락하며 건물 매입을 싼 값에 할 수 있었죠. 만약 이러한 위기를 그저 회피하려 하거나 불가항력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건축세계는 물론이고 저의 40년 잡지 인생도 없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건축세계>와 <인테리어월드>를 비롯해 자체 발행하는 단행본 등은 아마존을 통해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레바논, 터키,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등 무려 20여 개국에 정기적으로 잡지와 단행본이 수출되고 있다.



    여전히 희망은 있다, 콘텐츠가 생명이다


    정광영 사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전히 잡지산업에 대한 미래 가치와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환경적 변화에 맞게 산업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


    "당장 제가 수출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듯이 현재 국내의 전문 잡지들도 해외 수출을 통해 충분히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문 잡지들은 그 동안의 축적된 정보와 노하우를 리뉴얼 해서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 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협회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함께 개척 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정 사장은 잡지 시장의 힘은 '전문성이 축적된 정보의 바다'에서 나온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터넷에 다양한 정보들이 넘쳐나지만 10년 20년 이상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정보는 그 자체가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이 세분되듯 이러한 전문지 분야도 좀더 세분돼야 한다. 더욱 전문화된 영역의 잡지인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힘을 합쳐 한 목소리를 내고,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위한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잡지산업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지금의 사명감을 잃지 말며, 당당히 정부나 정책기관, 정치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협회가 다시 일어서고 더욱 강해져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잡지산업이야말로 지식산업이고 국민정서 함양을 선도하는 문화산업입니다. 반드시 정부차원에서도 진흥을 시켜야 합니다. 대부분의 잡지 발행인들을 만나보면 정말 모두가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이 산업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트렌드에 의해 가치 있는 문화와 정서가 사라지는 환경은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위기를 새로운 비전을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난세는 때로는 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정광영 사장이 위기의 잡지산업을 구해낼 영웅이 될지 꿈꾸는 돈키호테가 될지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