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코리아'... 아시아 투자금 69%가 한국에

      입력 : 2017.01.18 09:35

      [외국인 자금 왜 몰리나]


      트럼프發 달러 강세 막바지에… IT·정유 등 한국기업 실적 좋아
      국정농단 사태를 전화위복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기대감도


      한국 경제가 새해 벽두부터 내수 부진, 어두운 경제 전망, 정치 불안까지 겹쳐 삼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는 가운데, 증시에는 외국인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17일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연초 이후 한국·대만·인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아시아 6개국 증시에 순유입된 금액 중 69%인 12억8400만달러(한화 약 1조5000억원)가 전부 한국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새해 벽두부터 국내 주식형 펀드를 7000억원 가까이 팔고 있는 개인들이나 주식 팔기에만 몰두하는 국내 기관들과는 대조적이다. 외국인은 왜 '바이 코리아(Buy Korea)'에 나서는 것일까.


      ◇아시아 투자금 중 69%가 한국으로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달러 강세(원·달러 환율 상승)가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이재훈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미국 트럼프 효과에 기댄 달러 강세가 과도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글로벌 증시에서 환(換)차익을 기대하는 머니 무브(자금 이동)가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한국 기업들이 아직은 돈을 잘 벌고 있다는 점이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는 "요즘 홍콩·싱가포르 등지 매니저들 사이에서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같은 한국 간판 종목들의 깜짝 실적이 회자되고 있다"면서 "돈냄새를 잘 맡는 스마트 머니가 한국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증권사들은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들의 순이익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120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메릴린치는 한국 시장을 올해 최고 수익을 낼 수 있는 1위 신흥국으로 꼽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또 최순실 게이트가 전화위복 계기가 돼 한국 증시가 앞으로 한층 성숙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5일 '낙관론자들은 한국 경제 회복에 돈을 건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정 농단 사태는 그동안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아왔던 재벌 중심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가가 다른 나라보다 저평가됐다는 점도 투자 유인 요소다. 주식의 내재 가치를 평가하는 주가수익배율(PER·기업의 수익 대비 주가 비율)로 따져볼 때 한국 증시의 2017년 예상 PER는 9.93배로, 대부분 두 자릿수인 다른 나라보다 낮은 편이다. PER는 낮을수록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중후장대·금융 등에 선별 투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기업 실적과 전망을 따지는 실리(實利) 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영증권이 작년 12월부터 지난 16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고판 20개 기업을 분석해보니, 유가증권 시장에서는 철강·화학·자동차 등 한국 경제의 뼈대인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 관련 주식과 금융주를 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반도체·IT 부품주에 관심이 컸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기 회복세의 수혜를 입거나 금리가 오를 때 수익을 내는 기업, 수출 비중이 높아 달러 강세 때 유리한 기업들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한 기업은 포스코였다.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제품 가격을 인상할 요건이 갖춰졌고, 중국 철강 기업들의 구조 조정으로 공급과잉도 해소될 기미가 나타나면서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또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른 것을 감안해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차(2위)와 기아차(17위) 등 자동차주도 약 3104억원어치 매입했다. LG화학(3위), 효성(5위) 등 소재·화학 분야 기업과 두산밥캣(16위)이나 두산인프라코어(20위) 등 미국이나 중국이 인프라 투자를 늘릴 경우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기업 주식도 많이 사들였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순매수가 가장 많은 20개 기업 중 절반이 IT 관련주였다. 디스플레이 장비를 만드는 AP시스템, 반도체 소재나 부품을 생산하는 SK머티리얼즈나 심텍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마냥 낙관할 시점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외국인 투자는 세계적인 주식 선호 현상에 따라 일부 낙수 효과를 보는 것이지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크게 좋아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며 "트럼프 취임, 사드 이슈 같은 중국과의 갈등 문제 등 앞으로 불확실성 요소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