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구원투수'로 나선 대기업

    입력 : 2017.01.16 09:43

    - SK신약, 유럽 첫 시판 허가
    코오롱 관절염약 올해 출시, 삼성·LG 공장 줄줄이 완공


    - 그룹의 든든한 자금 지원
    바이오벤처와 공동 연구 확대


    중견 제약사들이 주도하던 한국 제약 업계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삼성·SK·LG·코오롱 등 제약·바이오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대기업 계열사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신약으로 국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연구개발(R&D) 투자도 대폭 늘리고 있다. 노경철 S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졌던 것은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대기업 계열사들의 공격적인 투자와 경영으로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SK 바이오 신약, 국내 첫 유럽 진출


    SK케미칼은 자체 개발한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가 지난 10일 유럽의약품청(EMA)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국내 바이오 신약이 EMA의 허가를 받은 것은 앱스틸라가 처음이다. 앱스틸라는 주 3~4회 투여해야 하는 기존 혈우병 치료제와 달리 주 2회 투여로 효과를 볼 수 있다. 박만훈 SK케미칼 사장은 "전 세계 혈우병 치료제 시장은 2015년 기준 연간 8조2000억원에 이르고 2020년에는 9조5000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라며 "미국 바이오 기업 바이오젠 이외에는 뚜렷한 경쟁자가 없어 매출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K의 다른 바이오 계열사인 SK바이오팜도 올해 신약 2종의 허가를 앞두고 있다. 수면장애 치료제 'SKL-N05'와 뇌전증 치료제 'YKP3089'가 미국에서 임상 3상 마무리 단계이다. SK바이오팜은 올해 중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이 제품들의 시판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SK케미칼 연구원이 신약 개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지난 10일 혈우병 치료제인 '앱스틸라'의 유럽 판매 허가를 받았다. /SK케미칼


    코오롱생명과학은 개발에만 17년이 걸린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인보사'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인보사는 지난해 일본 미쓰비시다나베제약에 5000억원에 기술이 수출됐고, 올 하반기에는 국내에 출시된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과 인보사 기술 수출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인보사에서 거둔 수익을 현재 개발 중인 난치성 통증 치료제·항암제 등에 재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공격적인 자금 조달을 위해 미국 자회사인 티슈진을 올해 안에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로 하고 NH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했다.


    올 초 LG생명과학을 합병한 LG화학은 올해 제약·바이오 분야 연구개발비를 최소 1000억원 이상으로 정했다. 지난해 870억원에 비해 15% 이상 늘어난 수치다. 자체 개발한 국내 최초의 당뇨·고지혈증 치료제 '제미-스타틴'을 올해 출시하고 오송 백신공장도 상반기 완공한다. 김명진 LG화학 생명과학연구소장은 "소아마비·폐렴 등 백신 신제품 임상을 국내외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국제기구 입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셀트리온과 삼성이 주도하고 있는 바이오 복제약(바이오 시밀러)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지난해까지 공장 증설과 신제품 개발 등 기반 마련에 주력했던 삼성의 바이오 계열사들도 올해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지난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발표자로 나서 "글로벌 제약사 15곳과 30가지 이상의 제품 위탁 생산을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달 모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2000억원을 출자받았고, 올해 6월 2000억원을 추가로 지원받아 영업과 제품 개발에 사용할 예정이다.


    ◇대기업이 제약산업 돌파구 마련할 수도


    대기업 계열사들의 등장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기업 계열사가 신약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등을 모두 내부적으로 진행하기는 힘든 만큼 중견 제약사나 바이오 벤처와의 제휴나 공동 개발이 더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신약 후보 물질의 40~50%를 외부에서 조달한다. 장기적으로는 인수·합병(M&A)을 통한 초대형 제약사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타진했던 대기업 제약·바이오 계열사들이 최근 해외 학회나 기업설명회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대기업 계열사들이 주춤하고 있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구원투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