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車 전장사업' 뛰어들자... 자동차 업계, SW 독자개발로 맞서

    입력 : 2017.01.16 09:33

    [전장 부품 놓고 주도권 전쟁]


    - 작년부터 IT 업체 진출 가속화
    2020년엔 357조원 규모 성장… 삼성·파나소닉, 전장 업체 인수
    구글, 올해 자율주행차 법인 설립


    - 반격 나서는 자동차 업체들
    현대차·도요타, 커넥티드카 개발… BMW, 독자적 플랫폼 선보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근 끝난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박람회 CES는 자동차 회사들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닛산·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 10여곳이 참가했고, 보쉬·콘티넨탈·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부품업체까지 합치면 자동차 관련 기업만 500여곳이 전시 부스를 열었다. 이처럼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IT 박람회에 대거 몰려간 것은 자동차와 IT가 융합하고 있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다.


    5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17'에서 참석자들이 현대모비스 전시관을 찾아 자율주행 시뮬레이터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점차 자동차와 비(非)자동차 업체 간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자동차와 IT의 결합이 활발해지고,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래형 자동차 시장에서는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전장(電裝) 부품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자동차 업계도 전장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자동차 생태계는 IT 기업, 자동차 제조업체, 통신 서비스 업체가 업종을 떠난 주도권 다툼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장 사업 2020년 357조원 규모


    미국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세계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 규모가 2015년 2390억달러(281조원)에서 2020년 3033억달러(357조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장 부품기업 프리스케일에 따르면, 전체 자동차 제조 원가에서 전장 부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35%에서 2015년 40%로 증가했고, 오는 2030년에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IT 업계가 스마트폰을 이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동차를 주목하면서 전장 부품 사업 확대를 통한 미래형 자동차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이번 CES에서 선보인 자율주행차는 주요 IT 업체의 전장 부품 기술 경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세계적인 그래픽처리장치 업체인 미국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기반의 컴퓨터를 탑재한 자율주행차를 선보였다. 다른 자율주행차처럼 각종 센서를 붙여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기존의 자율주행차와 달리 차량 앞 유리에 설치된 카메라로 정보를 수집해 자율주행을 하는 방식이었다. 인텔은 실시간 도로 정보 등 방대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해 자율주행차에 적용할 5G(5세대 무선통신) 모뎀칩을 개발해 2021년까지 고속도로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도심에서 승차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IT 업체의 전장 사업 진출은 지난해부터 가속화됐다. 일본 파나소닉은 지난해 12월 1000억엔(1조270억원)을 들여 오스트리아 자동차 부품 업체 ZKW를 인수해 자동차 전장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80억달러(9조4000억원)를 들여 미국의 자동차용 전자장비 전문 기업 하만 인수를 발표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12월 세계 3위 휴대전화 제조사인 중국의 화웨이와 제휴했다. 두 회사는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위치 정보와 신호 체계 등 교통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5G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구글은 올해 중에 별도 법인을 설립해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본격 나설 예정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자동차에 주목하고 있다. 차세대 자동차의 등장이 빨라지면서 차량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부터 내비게이션·콘텐츠 등을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까지 그 수요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지난해 291억달러에서 2019년 374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스마트폰 반도체 회사인 미국의 퀄컴이 지난해 10월 네덜란드의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를 인수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분석됐다. NXP는 자동차 에어백과 쌍방향 통신 시스템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드는 차량용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이다.


    ◇자동차 업체도 방어 나서


    IT 업계가 전장 사업 확대를 통해 향후 자동차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려 하자 자동차 업체들도 반격에 나섰다. 독자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IT 업체와 손을 잡되 주도적으로 협력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4월 차량지능화사업부를 출범시키고 커넥티드카(인터넷으로 연결된 첨단 자동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에는 시스코와 '커넥티드카 개발을 위한 전략적 협업 협의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BMW는 독자적인 커넥티드카 운영 플랫폼 '오픈 모빌리티 클라우드'를 선보인 바 있다. 차량의 네트워크를 통해 개인 일정과 차량 충전 상태 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도요타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작으로 자동차에서 수집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회사 '도요타 커넥티드'를 설립했다. 이와 함께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는 IT 업체에 대한 견제도 거세지고 있다. 구글과 애플이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완성차 업체와 협력을 시도했지만 완성차 업체들이 선뜻 손을 잡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환경 규제와 맞물려 미래형 자동차 산업이 커질 전망이어서 전장 사업에서 자동차와 IT 업계의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는 안전성과 내구성에서 진입 장벽이 높아 IT 기업으로서는 자동차 업체와 협력하는 게 시장에 손쉽게 진입하는 방법이고, IT 기술력에 한계가 있는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도 IT 업계와 제휴하면 경쟁력을 빨리 끌어올릴 수 있다"며 "자동차와 IT 업체와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따라 향후 글로벌 자동차 시장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전장(電裝) 부품


    차량용 정보·오락장치, 디스플레이, 통신 장비 등 자동차에 탑재되는 전자 장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최근 자율주행차·전기차 등이 차세대 자동차로 주목받으면서 중요성이 커지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