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기업 매출 3년째 줄어... 60년대 산업화 이후 처음

    입력 : 2017.01.09 09:28

    [본지, FN가이드와 실적 분석]


    18개 기업 중 8곳이 매출 줄어… 6개 기업 감소폭 10% 웃돌아
    삼성전자·현대車도 성장폭 미미


    인원 감축·구조조정 통해 영업이익만 늘어 불황형 흑자
    '축소 경제' 고착화될 가능성


    포스코는 작년 약 560만t의 후판(厚板·두께 6㎜ 이상으로 선박 건조 등에 쓰이는 철판)을 생산했다. 이는 전년보다 약 20만t 줄어든 것이다. 포스코는 올해는 후판 생산을 500만t까지 더 낮출 방침이다. 후판의 최대 수요처인 조선사들이 최악의 '수주 절벽'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여기다 미국이 지난해 한국산(産) 철강 제품에 대해 최대 6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사실상 포스코의 대미 수출은 8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악재가 이어지면서 포스코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10% 줄어든 52조원으로 증권가는 예상하고 있다.


    지난 6일 LG전자는 작년 매출액(잠정치) 55조3712억원, 영업이익 1조3377억원'을 올렸다고 공개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2% 늘었지만, 매출액은 2% 줄었다. LG전자의 매출 감소는 휴대전화 등의 실적 부진 속에서 자동차 전장(電裝) 사업 등 신성장 분야가 아직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출 감소가 만성화되는 대표기업들


    보호무역주의 강화, 글로벌 경제의 장기 불황, 정치·경제적 리더십 공백 등 대내외 악재 속에서 국내 대표 기업들의 매출 부진이 만성화되고 있다. 본지가 금융정보업체 FN가이드와 20대 그룹의 주력 계열사 가운데 18개 기업(증권사 보고서가 없는 동부화재·부영 제외)의 작년 실적을 분석한 결과, 이 기업들의 매출액 총합이 3년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참조>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우리 주요 기업들의 매출액 총합이 3년 연속 줄어든 것은 1960년대 산업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20대 그룹이 기업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산업 전체의 성장판이 닫히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개별 기업으로 볼 때, 총 18개 기업 중 8곳의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저유가로 석유제품 가격 하락에 시달리는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는 2년 연속 10% 이상 매출이 줄었다. 두 자릿수 매출액 감소를 기록한 기업이 6개에 달했다.


    매출이 늘어난 기업의 성장폭도 미미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6일 지난해 잠정 매출액을 201조54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전년보다 0.4% 증가한 것이다. 막판 예상치 못한 '반도체 호황'이 없었더라면, 역시 매출 감소를 면키 어려웠다. 현대자동차도 매출은 2.2% 증가했지만, 자동차 판매는 486만대로 전년보다 2.1% 줄었다. 일부 고급차 판매 증가와 할부·리스 등 금융 부문 성장 덕분이란 얘기다. 김경준 딜로이트안진 경영연구원장은 "우리나라는 20~30년째 대표 기업과 대표 업종에 거의 변화가 없어, 산업 자체가 노쇠화 경향을 보이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나마 늘어난 영업이익도 결국 '불황형 흑자'


    수주 가뭄에 시달리는 현대중공업은 최근 군산조선소 650명을 대상으로 울산 본사 근무 등 인력 재배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현대중의 수주액은 44억달러. 당초 목표한 156억달러의 28%에 불과했다. 일부 독(dock)은 사실상 가동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은 2015년 1조5400억원 영업손실에서 지난해 1조6000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할 전망이다. 세 차례의 희망퇴직과 에너지 사업부문 등의 분사를 통해 4100여명을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맸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도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11% 이상 줄어들 전망이지만, 오히려 영업이익은 620억원에서 8850억원으로 13배 늘었다. 대대적인 재무구조 개선 등 원가 절감과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 상황 개선 덕분이다.


    18개 대표 기업은 매출 감소에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늘었다. 이 기업들의 영업이익 총합은 54조4700억원으로 전년(41조원)보다 약 33% 늘었다. 매출을 확대해 영업이익도 늘리는 선순환구조가 아니라, 비용을 쥐어짜서 이익을 늘리는 '불황형 흑자(매출 감소 속 이익 증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건비·연구개발(R&D) 등을 줄여 영업이익을 늘리는 '불황형 흑자'는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의 매출을 더욱 줄어들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지만 우리는 기업들이 비용·투자를 줄이면 '축소 경제' 현상이 고착화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