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죄다 뛰는데 월급은 그대로... 시름 깊은 서민들

    입력 : 2017.01.09 09:22

    설은 다가오고, 살림은 팍팍하고


    - 2~3배 뛴 무·양배추값
    27개 생필품 평균 10% 올라 "차례상 차리기 벌써 겁나네요"


    - 외벌이는 소득까지 줄어
    3분기 연속 마이너스는 처음… 정부, 설연휴 직전 대책 내기로


    "남편 회사에서 연말 보너스가 안 나왔어요. 설이 다가오는데 쓸 돈이 부족해요. 요즘은 계란이니 배추니 하는 먹을거리가 너무 비싸잖아요. 그런데 주변에는 일자리 잃은 사람도 있으니 살기 팍팍하다는 말을 하기도 어렵더라고요…."


    경남 창원에 사는 주부 박모(41)씨의 하소연이다. 설 연휴가 3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서민 가계에는 좀처럼 흥이 나지 않고 있다. 소득이 줄어드는 추세가 뚜렷한 가운데 생활 물가가 치솟고 있어 서민 살림살이에 주름살이 늘고 있다.


    ◇가파르게 치솟는 차례상 물가


    연초부터 농축수산물 가격이 무섭게 치솟고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으로 무의 소매가격이 개당 3096원으로 최근 5년 사이 평균 가격(1303원)의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배추 한 포기는 4354원으로 작년 초보다 50% 올랐다. 작년 10월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밭작물이 수해(水害)를 입은 탓이 크다. 계란은 AI(조류인플루엔자) 영향으로 출하가 줄어들면서 두 달 전 5000원대이던 한 판 가격이 9000원에 육박하고 있다.


    육류 중에서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수입 소고기가 6~13%가량 가격이 뛰었고, 돼지 삼겹살(국산 냉장육 기준)도 평년보다 7.5% 비싸다. 남반구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호주산 소고기 값이 급등했고,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영향으로 비싼 한우 대신 돼지고기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갈치 등 수산물도 마찬가지다. 물오징어(한 마리)는 2974원으로 평년보다 14.5% 비싸고, 갈치(한 마리) 역시 9759원으로 평년보다 21.2% 비싼 가격에 팔린다. 오징어는 해수(海水) 온도 상승으로 개체 수가 줄어드는 데다, 중국 어선들이 싹쓸이 조업을 하고 있다. 갈치는 한·일 어업협정 결렬로 우리 어선이 일본 근해에서 조업할 수 없게 되면서 어획량이 급감했다.


    서민 가계는 이번 설 연휴 때 차례상을 차리기가 겁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으로 설 성수품과 생활필수품 27가지 물가는 1년 전보다 9.9% 올랐다. 12월 평균 물가 상승률(1.3%)과 비교하면 차례상 물가가 다른 물건 값 상승률의 8배에 가깝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산유국들의 감산(減産) 합의 이후 휘발유 등 기름 값이 오르는 것도 서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가계 소득은 뒷걸음질


    이처럼 물가가 치솟는데 가계 소득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전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세금 등 내고 실제 쓸 수 있는 소득) 증가율은 작년 3분기 0.7%까지 떨어졌다. 2014년 3.5%, 2015년 1.9%였던 것과 비교하면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게 정체되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내수(內需) 침체와 수출 부진으로 기업들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거나 구조조정에 들어간 영향이 크다.


    특히 외벌이 가구의 소득은 아예 작년 1분기부터 세 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벌이고 있다.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2016년 3분기 외벌이 가구 소득은 371만원인데, 2015년 3분기(377만원)보다 6만원쯤 줄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조선업 등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배우자가 실직해도 버팀목이 있는 맞벌이 가구에 비해 외벌이 가구가 타격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득이 늘지 않다 보니 소비가 줄고, 이것이 기업들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져 일자리 감소를 부르고, 이런 연쇄적인 파장이 다시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부, 뚜렷한 해법 못 내놔


    생활 물가 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작년에 1%였던 물가 상승률이 올해는 1.6%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유가와 국제곡물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백승훈 롯데마트 상품기획자(MD)는 "작년 태풍 등의 영향으로 겨울 채소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당분간 채소 가격 고공행진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는 설 연휴 직전 긴급 민생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세를 진정시키고, 경기 침체로 타격이 큰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생활 물가를 안정시킬 방안을 내놔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려 가계 소득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