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원대 걸어다니는 광고판... 중국 파워블로거 '왕훙 경제'

    입력 : 2017.01.04 10:00

    [중국판 '셀럽 경제']


    - 패션·화장품·여행·IT까지 섭렵
    인터넷 방송 1분에 10만명 몰려잘
    나가는 '왕훙' 1년 수입은 中 국민 배우 판빙빙의 2배 넘어


    - 전문 인큐베이팅 기획사까지
    10~20代 '주링허우' 세대 60% 장래희망으로 왕훙 꼽아
    연예인처럼 화술·몸매 관리도


    매년 11월 11일 열리는 중국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 할인 행사는 '지상 최대의 온라인 쇼핑 축제'라 불리며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쉽게 열도록 한다. 지난해 광군제 행사를 주최한 중국 온라인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하루 매출액 20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행사 시작 15시간 만에 전년도 매출액(약 15조5700억원)을 뛰어넘으며 사상 최대 매출 수입을 올린 것이다.


    알리바바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왕훙(網紅)'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웠다. 왕훙은 중국 인터넷상의 유명 인사를 가리키는 '왕뤄훙런(網絡紅人)'을 줄인 말로, 한국의 유명 인터넷 방송 진행자(BJ)·파워블로거와 비슷한 개념이다. 왕훙은 인터넷 개인 방송을 통해 주로 미용·패션 분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수많은 네티즌 팬을 거느리고 있다. 왕훙이 방송에 입고 나오는 옷, 사용하는 화장품들은 엄청난 인기를 끈다. 왕훙이 진행하는 인터넷 개인 방송은 1분 만에 10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끌어모을 정도로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왕훙은 기업들에 최고의 광고 모델로 꼽힌다. 일부 왕훙은 온라인상에 직접 쇼핑몰을 내고 자기 제품을 인터넷 방송에서 직접 광고하기도 한다.


    알리바바는 지난 광군제 행사에 왕훙 16명을 고용하며, 이들이 출연한 인터넷 광고 방송을 300편 이상 내보냈다. 중국 최고의 인기 왕훙으로 꼽히는 파피장(papi醬·30)은 행사 당일 화장품 브랜드 '릴리 앤드 뷰티'의 인터넷 생방송 판매를 맡으며 10억위안(약 1730억원) 매출을 올렸다. 전체 알리바바 매출의 120분의 1 정도를 왕훙 1인이 벌어들인 것이다. 알리바바가 광군제 행사에 파피장을 고용하며 지불한 액수는 2200만위안(약 38억원)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떠오르는 인터넷 스타 왕훙… '왕훙 경제' 등장


    2015년부터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5분 내외의 유머 동영상을 올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 파피장은 1년 만에 2100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끌어모으며, 중국 경제의 파워 스타로 떠올랐다. 현재 파피장의 몸값은 3억위안(약 518억원)으로 평가된다. 잡지 모델과 온라인쇼핑몰 모델로 활동했던 장다이(張大奕·30)도 인기 왕훙으로 꼽힌다. 2014년부터 타오바오몰에서 화장품과 의류를 팔고 있는 장씨는 2015년 매출액 3억위안(약 518억원)을 기록하며 타오바오 내 패션 쇼핑몰 중 매출액 2위에 올랐다. 500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장씨가 그해 벌어들인 수입은 중국의 '국민 여배우'라 불리는 판빙빙의 수입(약 25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11일 중국에서 열린 광군제 행사에서 중국의 유명'왕훙(網紅·인터넷 유명 인사)'인 파피장(가운데)이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화장품 판매 광고를 하고 있다. 이날 파피장이 올린 매출은 10억위안(약 1730억원)에 달했다. /인민망


    왕훙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커지며 최근엔 '왕훙 경제'란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유명인이 사용하는 아이템이 화제가 되고 단숨에 히트상품 반열에 오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셀럽경제(celeb―economy)'의 중국판인 셈이다.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며 팬들에게 받는 가상 선물과 게시물이나 동영상에 유명 제품의 광고를 붙이며 얻는 광고 수입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 운영 수입이 왕훙의 주 수입원이다. 특히 왕훙들이 온라인 쇼핑몰 운영을 통해 거둬들이는 수입은 전체 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타오바오에서 왕훙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규모는 10조4000억원으로, 중국 영화산업 규모(7조4000억원)를 뛰어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엔 왕훙들이 신제품 발매 등 기업 이벤트에 참석해 광고 모델로 활약하는 등 왕훙 경제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급성장하는 '왕훙 경제'… 내년까지 17조원 규모로 성장 예상


    중국 시장조사 기관인 애널리시스는 2016년 왕훙 경제의 규모를 528억위안(약 9조1200억원)으로 추산했다. 2018년 전망치는 1016억위안(약 17조5000억원)으로 2015년부터 3년간 연평균 60%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투자은행 궈타이쥔안 증권은 왕훙 경제가 의류 분야에서만 2016년 1000억위안(17조28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중국 온라인 의류 쇼핑시장 전체의 6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왕훙 경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으로는 중국 내 인터넷 보급이 늘면서 개인 방송을 시청하는 네티즌이 급증한 것이 꼽힌다. 2012년 약 5억3700만명이었던 중국 인터넷 사용자는 지난해 6월 약 7억1000만명까지 늘었다.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도 최근 2~3년 사이에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해 현재 2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기적으로 인터넷 개인 방송을 시청하는 중국 네티즌은 3억2000만명이 넘는다. TV에서만 접할 수 있는 연예인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왕훙이 소비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주링허우(九零後)' 세대가 경제력을 갖추기 시작한 것도 왕훙 경제 성장의 원인으로 꼽힌다. 주링허우 세대들은 그 위 세대들보다 훨씬 PC와 스마트폰에 친숙하며 SNS를 통해 정보와 취향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다. 모바일 쇼핑에 익숙한 주링허우는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전통적 광고보다는 지인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의 추천을 참고하는 소비 경향을 보이는데, 왕훙은 이런 주링허우 세대의 특성을 파고들었다는 평이다. 주링허우 세대 중 60% 이상이 왕훙이 되는 것을 꿈꾼다는 텐센트 빅데이터 분석도 있었다.


    ◇패션에서 여행·IT까지… 전문 인큐베이팅 기획사도 등장


    왕훙이 기업 마케팅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최근엔 패션뿐 아니라 여행·IT· 온라인 게임 분야 등으로 왕훙 경제가 확대되고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인 취날은 지난해 5월 중국의 유명 관광지 8곳에 왕훙 10명을 보내 이들이 현지 관광지를 소개하는 내용의 인터넷 생방송을 내보냈다. 3시간씩 총 16차례 진행된 생방송의 시청자 수는 총 1000만명에 달했다. 왕훙을 모셔오는 비용도 인기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베이징만보에 따르면 기업체가 왕훙을 한 번 섭외하는 비용은 항공권과 숙박비를 제외하고 최저 1만위안(약 172만원)이다. 인기 왕훙의 경우 10만위안이 넘는다.


    최근 중국에선 왕훙을 대규모로 육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인큐베이팅 기획사까지 등장했다. BBC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 퍼져있는 왕훙 인큐베이팅 기획사는 50여개에 이른다. 이들은 연예기획사가 연예인을 발굴하듯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 왕훙을 선발한 뒤 몇 달간의 합숙 훈련을 통해 화술과 메이크업, 몸매 관리 등을 집중 교육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발된 왕훙에겐 전용 코디네이터와 촬영 기사가 붙으며, 이들은 기획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총 판매액의 20% 정도를 수입으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