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실직자는 中企로... 한국 실직자는 집으로

    입력 : 2017.01.03 09:22

    [한국 경제 새 길을 찾자] [2] 소득 격차 줄여야 내수 살린다


    - 핀란드 노키아 실직자
    2년간 매달 380만원 실업수당, IT 中企에 기술관리자로 취업
    "예전과 급여 차이 크지 않아"


    - 한국 조선소 퇴직자는 '소득 절벽'
    8개월간 월 140만원 실업급여… 치킨집 등 소규모 자영업 기웃


    - 포용성장 외치는 각국
    아베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의 80%는 돼야"


    핀란드의 대기업 노키아에서 월 5000유로(약 630만원)를 받던 엔지니어 타투 룬드(Lund·43)씨는 2012년 말 해직됐다. 그는 이후 약 2년(100주)간 매달 3000유로(약 380만원)의 실업 수당을 받으며 일자리를 찾았다. 창업 지원금(2만5000유로)을 받아 작은 사업도 시도해보고, 대학 직업교육인 eMBA(경영학석사) 1년 과정도 수료했다. 핀란드 고용청을 통해선 일자리 제의가 계속 들어왔다. 룬드씨는 2015년 초 중소 IT(정보기술) 기업에 기술 관리자로 취업했다. 그는 "정부와 옛 직장의 여러 지원을 감안하면 지금의 급여 차이는 크지 않다"고 했다.



    최근 국내 대형 조선사에서 퇴직한 김모(57)씨는 8개월 예정으로 월 140만원의 실업 급여를 받는다. 초과근무수당이 많던 때 받던 월 300만원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생활은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곳의 임금 수준이 형편없다. 30여년간 조선 설비만 만졌던 김씨는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 김씨는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목욕탕·세차장 등에 구직했다는 확인서를 받으러 다니다 보면 '뭐 하고 있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퇴직 위로금으로 80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1년 전 아내가 "한 푼이라도 벌겠다"며 작은 피부관리숍을 차릴 때 낸 빚을 갚는 데 몽땅 썼다. 가겟세는 또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아내와 20㎡(약 6평) 남짓한 월세 40만원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실업 급여가 끊기면 언제 '소득 절벽'이 닥칠지 모른다. 그는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득 격차 너무 커 사회안전망 효과 '반감'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후 사회안전망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북유럽의 복지 선진국 핀란드에는 못 미친다 해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97년 경제 모델'하에서 대기업-중소기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너무 커지면서 그나마 있는 사회안전망을 체감하기 어려워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가운데 정규직 월평균 임금(약 280만원)은 비정규직(약 149만원)의 약 두 배에 달한다. 또 대기업 월평균 급여가 502만원인 데 반해 중소기업은 311만원 수준이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대기업 비정규직 또는 중소기업에 재취업하는 순간 과거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기업 실직자들이 자신의 기술·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가지 않는다. 대신 빚을 내 '치킨집'으로 대표되는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하지만,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한국의 격차 문제는 복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며 "아무리 세금을 올리고 복지 지출을 늘려도 한계가 크다"고 말했다.


    ◇IMF와 OECD, '포용 성장' 대안 제시


    우리나라의 임금 격차는 국제적으로 볼 때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 한국의 임금 10분위 경계소득 배율(임금 상위 10% 경계값을 하위 10% 경계값으로 나눈 것)은 4.8배로 OECD 34개국 중 32위다. 한국보다 격차가 큰 나라는 미국(5배)·콜롬비아(5.2배)밖에 없다.


    내수를 일으켜 경제를 살리려면 복지 재정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은 최근 국내외에서 힘을 얻고 있다. OECD 등 국제기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전 세계적으로 소득 불평등이 굳어질 조짐을 보이자 계층 간 격차를 줄이자는 '포용 성장(Inclusive Growth)'을 위기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작년 6월 150여 개국을 분석한 '소득 불균형의 원인과 결과' 보고서에서 하위 20% 소득을 1%포인트 높이면 성장률이 5년간 0.38%포인트 오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 80%는 돼야"


    각국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본 아베 정부는 최근 비정규직 임금을 독일·프랑스 등과 비슷한 정규직의 80%로 맞추라고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도 작년 총선을 앞두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경제에 혁신 분위기를 불어넣기 위해 소득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혁신 기업이 나오려면 중산층 수요 기반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식료품 외에는 사지 않는 저소득 계층이 급증하면서 혁신 제품 수요도 줄고 있다"며 "소비를 늘리고 혁신 사회를 만들려면 이들의 소득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