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1兆 과징금에... 퀄컴, 중국엔 굽실 한국엔 발끈

    입력 : 2016.12.30 09:26

    ['특허 갑질' 상반된 대처 왜?]


    - 작년 중국엔 "오히려 기뻐"
    中 휴대전화 업체에 한정된 명령… 불법 사용 업체들과 협상 길 열려
    사용료 낮춰도 퀄컴 이익 늘어


    - 한국과는 긴 법정공방 예고
    모든 스마트폰·반도체업체 대상 韓美中 IT 기업들 '反퀄컴 대오'
    퀄컴, 매출 감소 막으려 강력 반발


    작년 초 중국 반독점 규제 당국의 과징금 제재 때는 곧바로 승복했던 미국 퀄컴이 28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제재에는 강력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과 한국 정부의 유사한 불공정 거래 제재에 대해 전혀 상반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2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세계 최대 통신용 반도체 기업 퀄컴에 60억위안(당시 환율 기준 약 1조5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퀄컴 측은 "요구받은 일정대로 과징금을 납부하겠다"며 "중국 정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으로 과징금(1조300억원)과 시정명령을 내린 한국 정부의 결정에는 "공정위 판단은 사실과 다르며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퀄컴, 중국 제재 때는 "불확실성이 사라져 기쁘다"


    퀄컴의 상반된 반응은 자사의 이해(利害)에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의 제재는 퀄컴에 막대한 과징금 부과와 함께 중국 휴대전화기 제조사에게 받는 로열티(특허 사용료)를 깎으라는 게 골자였다. 휴대전화기 판매 가격의 100%를 기준으로 산정하던 로열티를 판매가의 65%로 낮추라는 것이었다. 단, 중국 정부의 시정명령은 자국(自國)의 휴대폰 제조업체만을 대상으로 했다.



    대신 퀄컴은 중국 정부의 제재로 그동안 로열티를 받지 못했던 중국 기업들로부터 특허 사용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조원대 과징금을 맞고도 스티브 몰렌코프(Mollenkopf)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내 불확실성이 사라져 기쁘다"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퀄컴은 이후 샤오미·레노버·오포·비보 등 중국 휴대폰 업체들과 로열티 계약을 맺었고 군소 업체들과도 특허 사용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퀄컴의 수익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퀄컴이 중국 정부의 결정에 곧바로 승복한 배경에는 이런 사업적인 이유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퀄컴의 사업 모델에 대해 메스를 갖다댔다. 공정위는 또 "퀄컴이 한국 기업은 물론 미국의 애플, 중국의 화웨이 등 해외 스마트폰 업체, 그리고 인텔·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도 모두 정당한 특허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 경우 퀄컴의 매출 감소는 피하기 어렵다. 반도체 업체들에게 특허 사용권을 주면 앞으로는 완제품인 휴대전화기 가격 대신, 부품인 반도체 가격을 기준으로 로열티를 받아야 해 수입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 퀄컴의 돈 로젠버그 총괄부사장이 "공정위는 퀄컴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요구한 기본 권리들까지 거부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낸 이유다.


    ◇공정위·퀄컴 간 법적 다툼… 4~5년 넘는 장기전 될 듯


    실제로 공정위의 제재에 대한 미국 퀄컴 본사의 위기감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에 정통한 소식통은 "삼성전자·애플·인텔·화웨이와 같은 한·미·중의 대표 IT 기업들이 모두 반(反)퀄컴 대열에 섰다는 사실을 가장 위협적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28일(현지 시각) "중국·한국 등 각국의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사까지 퀄컴을 견제하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IT 업계의 관심은 이제 공정위와 퀄컴 간 소송전에 쏠리고 있다. 한국 법원의 판결이 퀄컴과의 로열티 협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중대한 사안인 만큼 소송이 4~5년 이상 걸리는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철저한 증거 조사를 했고 퀄컴의 반론권도 보장했다"며 "2009년 과징금 소송 때처럼 승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공정위가 2700억원의 과징금을 내렸을 때도 퀄컴은 소송을 제기했고 2013년 서울고등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이 건은 퀄컴이 상고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퀄컴 측은 끝까지 총력전을 치를 태세다. 퀄컴은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모두 인정할 수 없다며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과 함께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벌써 유명 법무법인 3곳과 계약을 맺고 소송을 준비 중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심영택 교수는 "공정위 결정이 퀄컴의 '아픈 곳'을 제대로 건드려 퀄컴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명확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려 분쟁 소지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