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로비단체? 전경련 어디로 가나

    입력 : 2016.12.29 09:40

    [회원사들 탈퇴 선언, 허창수 회장 내년 2월 사임… 쇄신안 고심]


    - 한국판 헤리티지재단
    정계에 다양한 정책 제안 통해 영향력 행사하는 민간단체 연구
    기부 문화 약한 한국선 미지수


    - 대기업 이익 대변 단체
    미국 200대 기업 CEO 모임처럼 WTO 같은 국제기구 상대로
    한국 업체들 입장 대변할 수도


    삼성·SK·LG·KT 등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핵심 회원사들이 잇따라 탈퇴 의사를 밝힌 가운데,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이승철 부회장이 내년 2월 회원사 정기총회 때 사임하겠다는 뜻을 28일 밝혔다. 허 회장은 이날 회원사들에게 서신을 보내 "전경련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회원 여러분께 많은 걱정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정기총회까지 여러 개선 방안 마련에 힘을 보태고 회장직을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승철 부회장도 이때 함께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이냐 해체냐의 기로에 서 있는 50층짜리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전경. /조인원 기자


    전경련이 개혁이냐 해체냐의 기로에 섰다. 일각에선 회원사들의 이탈이 계속되면 전경련이 저절로 와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전경련은 정기총회 때까지 쇄신안을 마련해 회원사들을 최대한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일부 회원사는 쇄신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전경련의 쇄신 모델로는 크게 싱크탱크(민간경제연구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기관, 순수 경제 외교 단체 등의 유형이 제시되고 있으나, 일각에선 해체론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영국 BITC 등 연구


    먼저 미국 헤리티지 재단과 브루킹스연구소 같은 '싱크탱크(민간연구소)' 모델이 거론된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기업·보수층 가치를 주장한다면, 브루킹스연구소는 진보·자유 가치를 내걸고 있다. 회원 수가 70여만명에 달하는 헤리티지 재단은 '시장 경제, 작은 정부, 강한 국방' 등을 내걸고 정계에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80년 레이건 정부 시절 헤리티지재단이 제안한 정책 중 60%가 실제 채택되기도 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예산의 80%는 기업·개인의 기부금, 20%는 정부 지원으로 운영된다. 전경련 관계자는 "헤리티지재단 예산의 75%가 개인에서 나오는데, 기부 문화가 약한 우리 사회에도 적용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을 기치로 내건 영국 BITC(Business in the Community)도 연구 대상이다. 1982년 설립된 BITC는 영국 찰스 왕세자가 회장, 대기업 회장들이 부회장을 맡아 런던 본부와 영국 각지 사무소에서 취약 계층의 고용을 돕고 지역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등의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장애인·전과자 등 취약계층 일자리 3500개를 창출하기도 했다.


    ◇미국도 대기업 이익 대변하는 로비 단체 활동


    경제 외교 단체로서의 기능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의 200대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협의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대표 모델이다. 이 단체는 친목 단체로 운영되면서도, 정부와 WTO 같은 국제 기구를 상대로 미국 기업들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는 로비 활동을 벌인다. 일본의 게이단렌이 2차대전 이후 54년간 일본 자민당에 정치 자금을 대며 유착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1993년부터 진행된 개혁 노력으로 2009년 정치 자금 기부를 중단하는 등 공익 활동과 기업 대변 역할에 충실하게 된 것처럼 전경련도 비슷한 개혁 과정을 거쳐 순수 경제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재계의 소통 창구라는 전경련의 순기능을 아예 없애면, 정부가 고용 창출안 등을 재계와 협의하기도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경련이 이미 국민적 신뢰를 잃은 만큼, 아예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회원사들 불만 수렴 중… 회원사들 탈퇴하려는 이유는?


    전경련은 회원사들이 전경련에 가졌던 불만도 수렴 중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다양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5대 그룹 관계자는 "전경련이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권의 뜻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며 완장을 차고 기업들에게 오히려 갑질을 해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예산을 받아 자체 사업을 지나치게 많이 벌이는 등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났다"는 불만도 드러냈다. 또 회비를 가장 많이 내는 삼성의 입장을 주로 대변하는 '삼경련(삼성+전경련)'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돼왔다.


    개혁 대상인 이승철 부회장이 임기 만료일(내년 2월)까지 버티며 개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회원사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한 4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승철 부회장 등에 대한 인적 쇄신을 하루빨리 단행한 뒤에 개혁을 추진해야 회원사들의 신뢰를 그나마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