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럭셔리 관광'... 상위 1% 외국인을 잡아라

    입력 : 2016.12.27 09:32

    [1200만원짜리 웨딩촬영 투어… 375만원짜리 미식 여행… 한국 관광산업 돌파구로 떠올라]


    고급 한식·사찰 음식 순례나 렌터카 몰고 전국 명소 도는
    특별한 경험·독특한 체험에 돈 아끼지 않는 외국인들 많아
    쇼핑 위주 저가 상품으론 한계… 관광산업 질적 도약 필요한 때
    차별화된 맞춤형 상품 개발 시급


    중국 광저우에 살고 있는 예비부부 왕카이(28), 리샤오루(26)씨. 내년 1월 결혼식을 앞두고 이들은 지난 10월 한국을 찾았다. 주 목적은 웨딩 촬영. 지불한 비용은 10박 11일에 1200만원이다. 이들은 "우리의 러브 스토리를 한류(韓流) 드라마처럼 찍어 달라"고 요구했고, 웨딩업체 측은 방송국 PD 출신 스태프를 투입해 전담 촬영시켰다. 또 대본 수정도 수시로 이뤄졌다. 매일 서울의 대표 맛집 방문은 물론 제주도 관광도 즐겼다.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 일반 웨딩 촬영보다 4~5배 비싼 럭셔리 상품이지만 이들은 "한국이 아니면 불가능한 상품이라 돈이 아깝지 않다"면서 "주변 지인들에게도 꼭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디아이스토리 김미아 이사는 "내년 3월 광저우 웨딩 박람회에 참가해 중국 VIP 예비부부들을 본격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26일 말했다.


    ◇저가 상품을 넘어 럭셔리 상품으로


    '럭셔리 관광'이 한국 관광의 질적 도약을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급 숙박 시설에 묵으면서 미식(美食)과 웰빙 등 독특한 체험을 즐기는 고부가가치 관광 상품이다. 올해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 1700만명을 돌파했지만 500만원이 넘는 초고가 럭셔리 상품은 1% 미만, 300만~500만원대 프리미엄 상품은 2%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대부분이 50만~80만원대 중저가 단체 쇼핑 관광 상품으로 입국하는 관광객이란 얘기다.


    한 중국인 커플이 서울의 거리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 장면처럼 한국의 이태원, 홍대 등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아이스토리


    최근 일본과 중국 시장을 상대로 3박 4일짜리 백제 유적지 탐방(230만원), 경주 벚꽃 구경과 한식 체험(200만원), '노 쇼핑, 제주 요트 체험'(127만원) 같은 상품이 나왔지만 저가 관광에서 벗어났을 뿐 럭셔리 관광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인도 시장을 겨냥해 김수로왕 부인인 인도 공주 허황옥의 묘가 있는 김해 등을 둘러보는 '매력 한국' 상품도 마찬가지다.


    업계에서는 향후 럭셔리 관광의 돌파구로 미식과 레저 관광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있다. 세계적인 음식 평가·안내서인 미쉐린 가이드에서 올해 별 3개의 최고 등급을 받은 신라호텔의 한식당 '라연'과 별 1개를 받은 '정식당', 사찰 음식 전문점인 '발우공양' 등에서 한국의 맛을 체험하는 '서울 고급 한식요리 4일 코스'는 1인당 375만원이지만 홍콩 관광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소재이 여유달인 여행사 대표는 "4박 5일간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60만원짜리 코스 요리와 와인을 맛보고 강남의 고급 한식당 뱀부하우스에선 24만원짜리 최고급 한우 모둠 구이 세트 등을 즐기는 1인당 450만원짜리 '서울 진미(珍味) 기행'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의 프랑스 음식점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셰프들이 만든 음식을 내놓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2스타를 받은 이 식당은 코스 메뉴가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김연정 객원기자


    모터사이클이나 렌터카를 직접 운전하며 10일 안팎에 전국 곳곳의 관광 명소를 일주하는 300만~400만원대 상품도 해외 클럽 동호인 사이에 소문이 나고 있다. 여기에 안티에이징 스파(anti-aging spa)와 미용 성형까지 결합하면 10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상품도 구성할 수 있다.


    ◇상위 1% 고객 감동시킬 기획력·전문성 갖춰야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럭셔리 관광 상품 개발에 돌입했다. 권병전 관광공사 K-관광상품실장은 "국가별로 선호하는 럭셔리 관광 유형에 따라 전략을 세분화해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유명 리조트에서 휴양을 즐기는 중국 부유층인 '푸하오(富豪·부호)'는 미용·의료·웰니스 상품으로 공략하고, 일본의 50~60대 '액티브 시니어'는 역사·문화·음식 등 전문 지식을 갖춘 가이드가 안내하는 테마 상품으로 파고드는 식이다.



    VIP 관광 전문 여행사인 코스모진 정명진 대표는 "상위 1% 고객들은 특별한 경험, 독특한 체험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이들의 섬세하고 차별화된 욕구를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연결시키는 기획력과 전문성이 필수"라고 말했다. 일본의 고급 전통 숙박시설인 '료칸'이나, 태국의 호화 스파 리조트처럼 한국을 각인시킬 새로운 숙박 형태를 정립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우리와 달리 일주일짜리 단기 휴가가 아니라 10일 이상, 심지어 한 달 넘는 휴가를 즐기는 해외 관광객들을 겨냥해 장기 체류 관광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은 "이병철·정주영 등 국내 창업가의 경영 철학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이나, 부유층 자녀들에게 승마·펜싱 등 스포츠와 국제 예절을 교육하는 아카데미 등 다양한 콘텐츠의 장기 체류형 상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