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풀까 말까... '타이밍 싸움' 시작됐다

    입력 : 2016.12.26 09:36

    [내년 상반기 추경 편성 논쟁]


    - "불씨 꺼지기 전에 재정 풀어야"
    "선진국에 비해 나랏빚 적어… 타이밍 놓치면 돈 더 들어"


    - "최악 대비해 실탄 아껴둬야"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 급감, 지금 돈 풀어도 경기 못 살려"


    정부와 여당이 내년 상반기에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방안을 협의하기 시작하면서 재정 확장과 재정 긴축을 주장하는 두 진영 간에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재정확대론은 경기가 가라앉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어 온기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재정긴축론자들은 경제가 더 나빠질 때를 대비해 실탄을 아껴둬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정치권과 학계뿐 아니라, 정부 경제팀 주축인 기획재정부 안에서도 확대론자(경제정책 부서)와 긴축론자(예산 관련 부서) 간에 시각이 엇갈린다. 내년부터 시작될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세와 맞물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재정 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재정확대론―"더 나빠지기 전에 재정 풀자"


    재정 확대 주장은 경기가 더 나빠지기 전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정부 역할론'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 경제는 내년까지 처음으로 3년 연속 2%대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커지는 등 저성장이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불씨가 살아있을 때 서둘러 나라 곳간을 열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재정확대론의 요지다. 재정확대론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도하고 있다. 김성태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경기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추경을 편성해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경제정책국 관계자들도 "성장률이 낮은 상태를 계속 방치하다가는 나중에 수습을 위해 더 많은 재정이 투입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새누리당이 지난주 "내년 2월에 추경을 편성하자"며 재정 확대에 불을 지폈다.



    재정을 늘리자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나랏빚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GDP) 대비 일반정부(중앙정부+지방정부) 부채 비율은 43%다. 이 비율이 일본은 243%에 달하고, 미국(126%), 프랑스(108%), 영국(96%), 독일(71%)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가 지난 9월 우리나라를 콕 찍어 "재정 여력이 있는 한국이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정긴축론- "재정은 후방에서 병참 역할 해야"


    반면 아직 극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재정을 아껴 써야 한다는 긴축론자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고령화·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따라 정부 수입의 원천인 세수(稅收)가 줄어드는 반면 복지에 들어가는 돈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정부가 지출에 신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재정은 최전선에서 싸우면 안 되고 후방에서 병참 역할을 해야 한다"며 "경제 활동의 보험 역할을 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주저하는 투자나 고용을 정부가 돈을 풀어 대신하는 방식으로는 경기를 살린다는 보장도 없고, 나라 살림만 나빠진다는 것이다. 보수개혁신당(가칭)을 주도하는 유승민 의원도 "내년 성장률이 2% 이하가 될 확률이 낮다면 추경이 필요 없다"며 새누리당의 내년 상반기 추경론을 반박했다.


    나라 살림을 짜는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들도 재정확대론을 경계한다. 구윤철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은 "우리나라는 가계와 기업의 빚이 많기 때문에 정부마저 빚이 많아지면 국가 신용도가 급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정긴축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반면교사 사례는 일본이다. 1990년대 초 불황이 찾아오자 일본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도로·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에 나랏돈을 대거 투입했는데, 경기는 살리지 못했고 재정만 낭비하는 정책적 판단 착오였다는 지적을 듣는다. 1990년 65.3%이던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00년에는 136.1%까지 치솟았다.


    ◇공통 주장- '찔끔 추경'은 세금 낭비


    양측 주장의 공통분모도 있다. 이른바 ‘찔끔 추경’을 편성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0조원 안팎의 애매한 규모로 추경을 편성하면 경기를 되살릴 수 있는 불쏘시개가 되지 못하고 아까운 세금만 낭비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현 정부 들어 2014년만 제외하고 매년 추경을 집행해 추경이 상시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이런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김대기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가뭄에 물 한 바가지 붓는다고 땅을 적실 수는 없는 법”이라며 “어지간한 위기는 참았다가 정말 위급할 때 충분한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또 마냥 재정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경제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구조조정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동 개혁 등이 이뤄지지 않아 경제 구조가 비효율적인 상태에서 재정을 쏟아 부어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