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인상 강풍... 강남 '재건축 대출塔' 흔들

    입력 : 2016.12.19 09:35

    [11·3 이후 7주 연속 내림세… 대출금리 추가 인상 우려에 수심 가득]


    초저금리 업고 대출받아 투자,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 주도
    강남 3구 매매 건수 절반으로… 호가 최대 4억원 떨어지기도
    "금리 인상 예고에도 강력 조치… 정부가 바보같은 정책" 비판도


    대기업에 다니는 윤모(44)씨는 요즘 매일 출근 직후 인터넷을 통해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6개월 금융채권 금리'를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포에 전세로 거주 중인 그는 지난 9월 서울 강남권의 전용면적 82㎡짜리 재건축 아파트를 약 16억원에 샀다. 4억원 전세를 끼고 차액 12억원 중 9억원 가까이 대출받았다. 윤씨는 "강남에 집 가진 친구는 올 들어 가만히 앉아서 수억원을 벌었는데, 부동산 호황에 나만 소외당하는 것 같아서 무리를 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의 호가(呼價)가 한 달 만에 '18억원'을 찍을 때만 해도 윤씨는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그 직후 상황이 급변했다. 정부가 잇달아 규제책을 냈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도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윤씨의 대출 이자 기준인 '금융채 6개월물(物)'은 그가 집을 살 당시 1.31%에서 이달 18일 기준 1.57%로 0.26% 포인트가 올랐다. 윤씨의 이자 부담도 매달 20만원이 늘어난다. 윤씨는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팔고 싶지만, 시세가 이미 내가 샀을 때 가격보다 1억원 가까이 내렸다"며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강남 재건축 단지가 금리 변동의 직격탄을 맞았다. 재건축 아파트는 올 들어 10월까지 초(超)저금리 속에서 일반 아파트보다 훨씬 가파르게 가격이 뛰었지만,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고 급락세를 보이면서 서울 전체 아파트값 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 8월 2~3%대에서 현재 3~4%대로 올랐고 미국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내년에만 1%포인트 정도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열' 주도했던 재건축, 이번엔 '급랭'


    부동산 리서치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 아파트 가격 하락세는 11·3 부동산 대책과 함께 시작됐다. 11월 첫째 주부터 지난주(12월 12~16일)까지 7주 연속 하락 중이다. 이 기간 재건축을 제외한 서울 시내 일반 아파트값은 단 한 주도 떨어지지 않았다.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11월 3주 연속으로 0.2%대의 하락률을 기록하다가 12월 들어 하락세가 0.1%로 줄었지만, 지난 15일 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면서 낙폭이 다시 0.15%로 커졌다. 강남구 개포 주공1단지 전용면적 42㎡ 아파트는 지난 9월 최고 10억7000만원에 거래되던 것이 18일 호가(呼價) 기준 9억5000만원으로 1억2000만원 하락했다. 서울 잠실 주공5단지 전용 82㎡ 아파트도 호가가 최고 18억원까지 올랐지만, 최근에는 14억3000만원짜리가 시장에 나왔다.



    급락했지만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강동구 둔촌동 T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하루에 한두 건 정도 있던 '얼마나 내렸나' 확인 전화조차 미국 금리 인상 소식과 함께 뚝 끊겼다. 한 통도 없다"고 했다.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일(日) 평균 아파트 매매 건수도 지난 10월 74건에서 이달에는 42건으로 절반 정도 줄었다.


    ◇"재건축 구매자 60% 이상이 대출"


    재건축 아파트가 금리 인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구입 시 대출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재건축 아파트는 재건축 이후의 예상 수익만큼 웃돈이 얹어져 거래된다. 하지만 낡은 아파트이기에 매매 가격 대비 전세금의 비율인 '전세가율'은 일반 아파트보다 훨씬 낮다. 그만큼 더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 예컨대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용면적 전용 84㎡짜리는 지난 10월 13억8500만원에 거래됐지만, 전세금은 5억3000만원 수준이다. 전세가율은 38%이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 73.3%의 절반도 안 된다.

    잠원동 양지공인 이덕원 대표는 "올해 잠원동에서 재건축 아파트를 산 구매자의 60% 이상이 대출을 끼고 샀다"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내년 한 해 동안 4% 넘어 5%대로 진입할 경우 이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재 없어 당분간 침체 전망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외에도 부동산 규제와 대출 규제 강화, 국정 혼란, 입주물량 증가 등이 겹치면서 당분간 거래 침체, 가격 약세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이 2018년 1월이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부활한다. 이 제도는 재건축으로 얻는 이익 일부를 정부가 환수하는 제도로, 2013년부터 유예 상태다.


    정책 실패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8월에 제대로 된 대책을 내지 않아 시장이 과열됐고, 11월에는 이미 시장이 조정 조짐을 보이는 데다 연말 미국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음에도 강력한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며 "'과열'과 '급랭' 사이를 오가는 '샤워실의 바보'를 보는 기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