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의 기습'... 삼성전자 허 찔리다

    입력 : 2016.12.15 09:50

    [4월에 인수한 샤프, 삼성에 LCD 패널 공급 전격 중단]


    - 궈타이밍 "타도 삼성"
    中·日·대만 연합군 이끌고 TV·스마트폰·電裝 도전장
    "패널값 두 배 내라" 배짱도
    - 삼성, 내년 출시 제품 재조정
    OLED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기존 LCD 시장은 방심


    궈타이밍(郭台銘) 훙하이 그룹 회장이 인수한 일본의 전자업체 샤프가 지난주 돌연 TV용 LCD(액정 표시 장치) 패널 공급 전면 중단을 통보하자 삼성전자가 대책 마련을 위한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본지 14일 자 B1면 참조〉 샤프는 삼성전자 한 해 TV 생산량의 10%에 달하는 500만대 분량의 40인치 이상 패널을 공급해왔다. 특히 고가 제품인 60인치·70인치 TV용 패널은 샤프가 유일한 공급처여서 삼성전자는 내년에 출시할 일부 TV 제품군(群) 판매량에 대한 재조정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LG전자의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에 맞서 내년 퀀텀닷(양자점) TV 신제품을 대거 출시하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선다는 전략이었지만 샤프의 기습 공격으로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커졌다.


    ◇'타도 삼성' 공언한 궈타이밍 회장의 승부수에 허 찔린 삼성


    샤프의 LCD패널 공급 중단 결정은 '타도 삼성'을 공공연하게 내세워온 궈 회장의 승부수로 풀이된다. 그는 애플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 폭스콘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궈 회장은 최근 "글로벌 정보기술기업으로 성장하겠다. 삼성전자를 3~5년 내에 따라잡겠다"며 삼성에 대한 공세를 예고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TV·스마트폰·전장(電裝·자동차 전자장비) 등 삼성의 주력 분야 곳곳에서 도전장을 내고 있다. 지난 4월엔 LCD 패널과 TV를 생산하는 샤프를, 5월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노키아의 휴대전화 부문을 인수했다. 또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는 자동차용 터치스크린 패널을 공급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샤프가 TV 패널 공급을 전격 중단한 것은 삼성전자에 대한 공격과 견제를 노골화한 행보"라면서 "궈 회장이 공급 중단 철회를 요구하는 삼성전자에 '패널 가격을 두 배로 올려달라'는 식으로 배짱도 부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허를 찔린 삼성그룹 내부에선 "궈 회장이 상식 밖의 조치를 취했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급히 이노룩스 등 대만 디스플레이업체에도 패널 공급 의사를 타진했으나 "이미 내년 물량은 공급 계약이 끝났다"는 통보만 받았다. 그룹 차원에서도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오랜 경쟁 관계였던 LG디스플레이에 패널 공급을 요청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업계에선 올해 초 훙하이가 샤프를 전격 인수하면서 삼성의 TV 패널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삼성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기습공격을 당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최근 일부 LCD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OLED 중심 생산 체제로 전환하면서 비상 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훙하이, 日·中·대만 연합군 이끌고 디스플레이 1위 한국에 거센 도전


    업계에서는 훙하이그룹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일본·중국·대만 연합군을 이끌고 1위인 한국에 지속적으로 도전할 것으로 본다. 궈 회장이 이끄는 폭스콘은 대만 1위 디스플레이 업체인 이노룩스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올 3분기 샤프와 이노룩스의 TV 패널 점유율 합계는 18.5%로, 세계 1위 LG디스플레이(19.6%)나 2위 삼성디스플레이(18.6%)와 맞먹는 수준이다. 게다가 폭스콘은 8000억엔(약 8조1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중국에 세계 최대 규모의 LCD 패널 공장을 짓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최근 부가가치가 높은 초대형 패널에 투자하면서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 TV 세계 3위 TCL의 패널 제조 자회사 CSOT가 각각 2018년, 2019년 가동을 목표로 초대형 패널 공장을 짓고 있다.


    반면 LCD 시장을 이끌었던 한국 업체들은 차세대 패널인 OLED 시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작년의 2배가 넘는 10조9000억원의 시설 투자를 단행하면서 OLED 라인 증설에 집중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올해 전체 설비 투자에서 50% 정도였던 OLED 비중을 내년 70%로 늘릴 계획이다.


    현대증권 김동원 기업분석부장은 "한국업체들이 OLED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기존 LCD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며 "이번처럼 외국 업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 업체뿐만 아니라 경쟁 관계였던 삼성-LG가 서로 손을 맞잡는 등 국내 기업 간 새로운 협력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