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업무 회의 앞두고 화장품 든 그대, '화섹남'

    입력 : 2016.12.14 09:44

    [남자의 화장, 이젠 경쟁력이다]


    유튜브에 '훈남 메이크업' 등 남성들 화장법 영상 인기
    화장품 모델로 평범한 외모의 조세호·권혁수 나서 환영받아
    '외모=경쟁력'이란 인식 확산… 당당히 관심 갖는 男 늘어나


    화장품 1인 방송 제작자 '임파'가 올린 영상. 못생긴 남자(영화 속 괴물 '오크'에 비유)가 화장으로 평범한 남자(흔한 남자)가 된다는 주제다. /유튜브 캡처

    화장품 관련 1인 방송 제작자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다양한 제품을 실제로 써보고 장단점을 평가하거나 화장법 가르쳐주는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 인기를 누린다. 그런데 1년쯤 전부터 남성들이 하나둘씩 뛰어들기 시작했다. '아이돌 ○○ 메이크업' '훈남 메이크업' 같은 제목을 달고 자기 얼굴에 직접 화장하는 영상을 선보인다. 여드름 가리려다가 화장을 배우게 된 평범한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남성들이 화장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드러내놓고 자기 얼굴에 색조 화장하는 영상을 공개하는 건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영상을 시청하는 남성들 반응은 크게 응원과 비난으로 나뉜다. 독특하고 실용적이라며 일부러 남성이 출연하는 화장품 영상을 찾는 여성도 많다. 여성 제작자들도 '남자친구 면접 갈 때 여자친구가 해주는 메이크업' '오빠 소개팅 나갈 때 여동생이 해주는 메이크업' 등의 제목으로 남성 화장법 영상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남성들이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패션은 물론 화장에 관심을 갖고 이를 당당히 드러내는 남성이 늘고 있는 것. 이달 초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선 남자 연예인 8명이 화장법을 배우고 직접 시연해보는 예능 '립스틱 프린스'가 첫선을 보였다. 이 프로그램 콘셉트는 이렇게 설명된다. '화장하는 섹시한 남자 '화섹남'의 시대가 왔다!'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1조2400억원. 올해는 1조5000억원을 바라볼 것으로 전망된다. 젊은 남성은 물론 피부 노화가 고민인 중년 남성도 적극적으로 찾는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 올가을 보습 화장품을 산 남성 중 20대(339%) 구매 증가율이 가장 높았고 다음이 50대(184%)였다(전년 동기 대비).


    고가의 에센스나 마스크팩, 피부톤을 보정하는 BB크림·선크림, 진동 클렌저 등 남성들이 즐겨 쓰는 화장품 종류도 세분화되는 추세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남성 7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4.5개 화장품을 쓰고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의 올가을 남성 화장품 매출은 수분크림 135%, 마스크팩 105%, BB크림 85% 등 작년에 비해 큰 폭으로 뛰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달 BB크림, 컨실러, 눈썹 펜슬(스펀지), 립밤, 눈썹칼을 담은 휴대용 남성 화장품 가방을 내놨다. 남성 화장도 이 다섯 가지 정도는 기본으로 통한다는 얘기다.


    배우 마동석이 출연하는 '에뛰드 애니쿠션 크림필터' 광고. 이 제품은 '마블리(사랑스럽다는 뜻의 마동석 별명) 쿠션'이란 별칭을 얻으며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 캡처


    최근엔 '꽃미남'보다 평범한 외모에 가까운 남성들이 화장품 모델로 환영받는다. 외모가 특별히 돋보이거나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남자만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락부락한 체구의 배우 마동석이 아모레퍼시픽 에뛰드 쿠션 모델로 나선 것이 대표적 사례. 개그맨 조세호·권혁수도 화장품 모델로 활동한다. 추성훈·이재진 등 TV 여행 예능 출연자들이 '1일1팩'을 외치며 마스크팩을 붙인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면접이나 미팅 등 중요한 자리가 있을 때 화장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남성 응답이 70%를 넘었다. 주로 어떤 때 화장하느냐는 질문에는 '중요 미팅'(22%)이란 응답이 '데이트'(17%)보다 많았다. 이제 남성들도 중요한 순간 자신을 돋보이게 할 일종의 무기이자 비즈니스 에티켓으로 화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외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두 달 전 미국 색조 화장품 브랜드 '커버걸'은 55년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 광고 모델을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17세 1인 방송 제작자 제임스 찰스가 짙게 그린 눈썹에 눈가와 입술 색조 화장을 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는 "내게 화장은 예술이자 하나의 창작 활동이다. 화장을 하더라도 남성으로서 당당하다"고 말했다.